[신동식칼럼] 평신도 운동은 없다

신동식 목사 (빛과소금교회, 기윤실 정직윤리운동본부장) ㅣ 등록일 2019-09-02 17: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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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한국 교회는 평신도를 깨우는 운동에 열심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제자훈련을 했다. 그 때에 들린 소리 가운데 중 하나는 '병신도'가 되지 않으려면 '평신도'가 깨어나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신동식 목사.ⓒ데일리굿뉴스

하지만 이 말은 매우 폭력적이다. 왜냐하면 목사는 깨어났는데 평신도가 깨어나지 않아서 한국교회가 문제인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아니면 목사가 잠들어 있어서 평신도가 깨어나서 목사를 깨워야 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평신도를 깨운다는 말은 매우 불합리하다.

하지만 한국 교회의 문제는 목사들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 그리고 더불어 직분자들의 부패 역시 오십보백보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한국 교회는 평신도가 없다. 오직 성도만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에 존재하지 않는 평신도 운동은 허상이다. 그러기에 평신도가 깨어나야 한다는 말도 허공의 말이다.

교회가 개혁되는 길은 목사를 비롯한 안수 받은 직분자들이 깨어나는 것이다. 그래야 일반 성도들이 신앙을 바로 세울 수 있다.

교회는 직분자와 일반 성도들로 존재한다. 일반 성도가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매우 적다. 대부분 직분자들이 교회를 힘들게 한다. 그러므로 직분자가 성경의 사람으로 깨어나야 교회가 평화스럽고 일반 성도들이 행복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한국교회는 평신도를 깨우는 운동에서부터 길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 한국교회는 강남에서 대형교회로 성장한 교회를 사모했다. 그래서 누구도 평신도라는 말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하기야 신학교수 조차 복음주의 운동의 측면에서 평신도를 깨운다고 말하고 평신도 신학을 말함으로 이 운동에 동조했는데 무슨 할 말이 있는가?

그동안 앞 다투어 만인 제사장을 외친 사람들이 스스로 평신도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개혁되지 않는 것은 바로 사제와 평신도 계급으로 철저하게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황을 평신도들이 만나고자 할 때 '알현한다'고 말한다. 이런 현실에서 평신도는 결코 깨어 날 수 없다. 더구나 평신도의 죄의 사죄 문제는 사제에게 달려있다. 그러니 어떻게 깨어남이 있을 수 있는가? 혹 깨어난다면 평신도 운동은 사제에 더욱 철저히 순종하는 것이다. 순종하지 못함에서 순종의 자리로 깨어나는 것이 평신도 운동이다.

그런데 지금 교회에서 이 일을 하겠다는 건가? 교회는 평신도가 없다. 그러므로 평신도를 깨우는 것도 없다. 그러니 평신도 운동이란 없다.

교회는 성도들의 공동체다. 성도들이 깨어나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교회는 직분자와 일반성도로 구성된다. 일반성도는 자라는 존재다. 아직은 영적인 어린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문제를 이들에게 물을 수 없다. 교회의 문제는 직분자들의 문제다. 직분자 공동의 문제이다.

물론 직분 가운데 성도들에게 설교하는 목사의 영향이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직분자인 장로와 집사가 제외되면 안 된다. 장로와 집사가 성경이 말하는 직분을 감당하면 교회 부패는 줄어든다. 목사의 만행도 사라진다. 그러나 직분자가 자기 역할을 못하면 서로 망한다.

그러므로 교회 개혁은 직분자가 깨어나야 한다. 직분자들의 자기반성과 회개와 갱신이 있어야 한다. 더이상 평신도 운운하지 말아야한다. 그 말에 숨어서는 안 된다. 직분자 전체의 문제다. 항상 교회는 이 가르침 위에 서야 한다. 직분자들이 깨어날 때 교회는 개혁된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직분자의 권위도 없고, 직분자의 자존감도 없고, 직분자로서의 소명의식도 없고, 직분자의 직분에 대한 이해도 미약한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건강하지 못하다. 직분자의 자기 위치가 무너진 교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평신도 운동이 아니라 직분자를 깨우는 운동이어야 한다. 종교개혁의 제자리로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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