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그래서'가 아닌 '그러나' 인생

이정기 목사 (신나는교회) ㅣ 등록일 2019-04-12 10: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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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기 목사ⓒ데일리굿뉴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자기를 부인해야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고,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어야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은 자기를 버린다는 말이다.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위험한 것이 인본주의이다. 내가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 생각, 내 지식, 내 경험이 앞서는 것이다. 참된 믿음은 내가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도록 맡기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도록 맡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한다. 아브라함은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하여 이삭을 번제로 바친다. 베드로는 이해되지 않아도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린다. 마리아는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이 이해되지 않아도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고 응답한다. 내 생각과 경험과 이성을 포기한 것이다. 내 소원과 계획과 뜻을 포기한 것이다.
 
인생에는 '그래서의 인생'과 '그러나의 인생'이 있다. '그래서'라는 접속사는 앞의 원인과 뒤의 결과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앞에는 항상 원인이 있고, '그래서'뒤에는 항상 결과가 있다. 느13:17-18절을 보자. "내가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 너희 조상들이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을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 
 
'그래서'앞에 원인이 있다. 그리고'그래서'뒤에는 결과가 있다. 안식일을 범하는 악을 행하자 그 결과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원인이 악이면 결과도 악이고, 원인이 선이면 결과도 선인 것이다.
 
눅14:16-20절을 보자.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었다. 종을 보내어 많은 사람들을 초청한다. 그런데 모두가 사양한다. 한 사람은 '나는 밭을 샀으니 나가 보아야 한다.' 그래서 가지 못하겠다고 한다. 또 한 사람은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니 시험하러 가야 한다.' 그래서 가지 못하겠다고 한다. 또 한 사람은 '나는 장가들었다.' 그래서 가지 못하겠다고 한다. 모두 이유가 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잔치 자리에 참여하지 못한다. 그들은 모두'그래서의 인생'이었다.
  
그런데 '그러나의 인생'이 있다. '그러나'라는 접속사는 앞뒤 서로 반대되는 내용을 이어 주는 역할을 한다. 요12:27절을 보자.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오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예수님의 마음은 괴로웠다. 예수님은 당신이 마셔야 할 잔이 어떤 잔인지를 알고 계셨다. 육체적인 고통보다 사람들에게 멸시 천대받으시는 정신적인 고통보다,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받는 영적인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셨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신다.‘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런데 예수님의 기도는 그래서로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죽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그래서가 그러나로 바뀌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의 기도도 똑같았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고 말씀하신다. <마26:38>그래서 이렇게 기도하신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런데 예수님의 기도가 바뀐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그래서가 그러나로 바뀐 것이다.
  
어떻게 그래서가 그러나로 바뀌었나? 바로 기도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예수님의 기도의 내용이다. 요12:28절에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고 있다. 이것이'그래서'가 아닌'그러나'의 인생을 살게 한 것이다. 예수님의 기도는 당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기도가 아니었다. 하나님 아버지를 설득시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는 기도가 아니었다. 예수님의 기도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나 중심적인 기도에서 하나님 중심적인 기도로 바뀌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그러나’의 인생을 살 수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기도하셨다. 기도에 얼마나 힘쓰셨는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되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생이 '그러나'인생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더 힘쓰고 애써 기도해야 한다. 언제까지 그렇게 기도해야 하나? '그래서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섬기기 싫습니다. 그래서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질 수 없습니다.'이 고백이 '그러나 하겠습니다. 그러나 섬기겠습니다. 그러나 용서하겠습니다. 그러나 사랑하겠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지겠습니다.' 이 고백으로 바뀔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가'그러나'로 바뀌면 내 영혼이 고요해진다. 평안해진다. 어떤 일을 만나도 요동하지 않는다. 넉넉히 승리한다. 많은 열매를 맺는다. 하나님이 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많이 보게 된다.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쓰임 받게 된다. 예수님처럼 '그래서'가 아닌 '그러나'의 인생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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