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일본 2차 보복.(사진제공=연합뉴스)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핵심 반도체 소재 수출을 규제한 지 1년이 됐지만, 수출규제도 한일갈등도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수출규제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그 발단인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한일 간 입장차가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을 통해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이지만, 한국 정부는 청구권협정으로 피해자 개인이 일본기업에 배상을 청구할 권리마저 사라진 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지난해 6월 한일 양국 기업의 자발적 참여로 조성된 기금으로 피해자에 위자료를 지급하는 '1+1'안을 시작으로 기금 조성에 양국 기업은 물론 국민이 참여하는 이른바 '문희상 안'까지 여러 방안을 제시했지만, 일본은 모두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아직 일본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최대 수십만 명에 이를 수 있는 과거사 피해자에 대한 해법을 담지 않고 있다는 이유 등으로 한국이 더 나은 안을 내놓기를 바라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양국 모두 코로나19 등 시급한 현안에 대응하느라 외교력을 집중하지 못하면서 강제징용 해법 찾기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문제는 한일관계가 더 악화하기 전에 대화로 문제를 풀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국 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위해 압류해놓은 일본기업 자산을 매각하는 현금화 명령이 오는 8월 4일 0시부터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와 기업이 현금화 절차에 협조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실제 자산 매각까지 수개월이 더 걸릴 수 있지만, 일본은 현금화가 실행될 경우 보복 조치에 나설 수 있음을 재차 시사하고 있다.
일본 신문들은 가능한 보복으로 일본 내 한국기업의 자산 압류나 한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 인상 등을 거론하고 있다.

이에 한국도 일본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를 재개하고, 일본의 추가 보복에 대비해 소재·부품·장비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는 등 다가오는 전운에 대비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일본과 대화를 조건으로 보류했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을 언제든지 다시 살릴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지소미아 폐기는 한미일 안보협력을 고리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강력한 반대로 한국에도 부담스러운 카드이지만, 일본이 추가 보복에 나설 경우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일 당국은 최근까지도 강제징용과 수출규제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기 위한 협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형식적인 소통에 그치고 있다.

지난 24일에도 김정한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과 타키자키 시게키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화상협의를 했지만, 기존 입장 교환 이상으로 더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일본이 메이지(明治) 시대 산업유산을 소개하는 정보센터를 개관하면서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이에 한국 정부가 강한 유감을 표하는 등 오히려 전선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다만 양국 모두 이런 상황에 위기의식을 느껴 대화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면 분위기 전환이 가능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올해 한국이 의장국인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 연내 개최되고 이를 통해 한일 정상이 만나 진솔한 대화를 나누면 관계 개선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양국 모두 코로나19로 침체된 경기 회복을 위해서라도 한일갈등이 경제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고, 내년 도쿄올림픽 개최를 기대하는 일본에게도 한국과 관계 악화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현금화가 이뤄지기 전까지 양국 정부가 지혜를 모아 해법을 찾아야 하며 적어도 강대강으로 충돌하는 최악의 사태는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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