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다르면 ‘틀리다’, ‘옳지 않다’고 규정해 혐오와 차별의 프레임을 덧씌우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위기에 지역과 인종차별·낙인·혐오는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바이러스가 돼버렸다. 그야말로 혐오가 만연한 사회다. 이에 본지는 혐오로 인한 갈등을 극복하자는 취지로 기획을 준비했다. 각종 혐오가 확산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짚어보고 그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노인혐오가 확산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고령화로 인한 부양비용 증가와 가치관 차이를 원인으로 꼽았다.ⓒ데일리굿뉴스

코로나 바이러스를 넘어 ‘혐오 바이러스’가 확산하고 있다. 특정 인종과 성별, 연령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혐오를 부추기는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노인 혐오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틀딱 적폐 노인에게는 요금 두 배 받아야’ ‘할 일 없어 심심하다고 경로우대 이용해서 끼리끼리 온종일 유림하는...’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문제를 보도한 포털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다. 이날 하루에만 200개가 넘는 노인 비하 글이 올라왔다.

틀니 소리를 빗댄 ‘틀딱’, 연금을 축낸다는 뜻의 ‘연금충’, 시끄럽게 말한다는 의미의 ‘할매미’ 등 온라인에서는 노인을 비하하는 표현이 널리 쓰이면서 ‘혐로(嫌老)·노인혐오’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최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두 차례 기자회견을 통해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전 이사장인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을 상대로 문제를 제기한 후 온라인에서는 이 할머니를 겨눈 혐오표현과 인신공격이 확산했다.

포털사이트 댓글에는 "치매다", "노망이 났다"는 식의 노인 혐오 표현부터 "대구 할매", "참 대구스럽다" 등 지역 비하 발언도 잇따랐다. 할머니의 발언 내용과 무관한 비난과 조롱을 쏟아낸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코로나19에 사망하는 노인이 늘면서 치료를 포기하거나 조롱하는 등 차별적인 행태도 나타났다.

이탈리아에서는 의료기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80세 이상 노인 환자 대신 젊은 환자를 중심으로 치료에 나섰고, 영국의사협회(BMA)도 의료진더러 인공호흡기 사용의 우선순위를 젊은 사람에게 둘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는 ‘부머 리무버(Boomer Remover)'라는 용어도 확산했다. 미국의 베이비부머 세대인 1946~1965년 사이 출생자들을 없앤다는 조롱의 의미가 담겼다.

일본에서도 SNS를 중심으로 수십명의 노인을 떠받치는 청년층이 코로나로 노인들이 사망하자 기뻐하는 모습을 담은 노인 혐오 일러스트가 등장했다. 해당 게시물에는 7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렀다.

일부 언론은 코로나19를 계기로 기성세대에 대한 청년 세대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령화 속도보다 빠른, 혐로(嫌老) 속도

전통 사회에서 노인을 공경하고 사회적 약자로서 보호하는 경로효친(敬老孝親)을 도리로 여겨온 우리나라에서 젊은 세대들의 ‘노인 혐오 현상’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고령화와 함께 노인 부양을 위한 복지비용이 증가하고 노인 일자리 문제가 대두되면서 젊은 층이 부담을 떠안게 됐다는 거부감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8월 통계청은 우리나라가 2025년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초고령사회란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이상인 사회를 말한다. 유엔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은 고령사회로 각각 구분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15~64세) 100명이 부양해야 하는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00년 10.2명에서 2018년 19.6명으로 늘어났고 2060년에는 82.6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유례없이 빨라지는 고령화 속도에 비춰볼 때 초고령 사회 진입이 이보다 더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각종 복지비용이 늘며 청년들의 노인 부양 부담이 커진데다, 일자리까지 빼앗아 간다는 불만 역시 노인 혐오 한 쪽에 자리 잡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 응답자의 77.1%가 ‘노인복지 확대로 청년층 부담 증가가 우려 된다’고 답했다. 고령사회에서 부양해야 할 노인들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청년들의 우려가 드러난 것이다. 

가치관 차이에 의한 세대 간 충돌과 함께 일부 노인들의 과격한 말과 행동도 노인 혐오가 심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는 통계 자료로도 증명됐다. 국가인권 위원회의 노인 인권 종합 보고서에 따르면 청·장년의 88%가 ‘노인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사회적으로 노인을 ‘소통 불가능한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또 젊은 세대들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무턱대고 양보와 복종을 강요하는 고령 세대의 태도에도 불편함을 토로했다.

대학생 최 모(23)씨는 “공공장소에서 노인들이 신체부위를 툭툭 건드리며 지나가거나, 노약자석 이외의 좌석에서도 양보를 강요하는 모습에 불쾌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혐로사회에서 경로 사회로 “모두 함께 노력해야”

이미 인구의 14.8%가 65세 이상 고령인 우리나라. 빠른 사회 변화 속에 세대 간 단절이 이어지면서 노인들에 대한 젊은 세대의 곱지 않은 시각이 혐오적인 태도로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갈등의 원인이 우리나라의 ‘압축 성장’에 있다고 분석하며 세대 간 소통의 장을 확대하기 위해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전근대 사회에서 빠른 산업화를 거친 70대 이상 인구와 경제가 발전한 단계에서 태어난 20~30대는 사고방식이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며 “세대 간 접촉과 교류를 늘려야 한다”고 해결책을 제안했다.

세대 간의 가치관 차이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혐오의 눈길은 거두고 이해의 눈빛을 보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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