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결국 '큰 손'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WHO와 모든 관계를 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의 승인 절차가 남아있지만, 재정적으로 가장 큰 도움을 주던 기여자를 놓칠지도 모르게 된 것이다.

미국은 WHO에 한 해 4억∼5억 달러의 기여금을 주는 '대주주'다.

WHO의 2018∼2019년도 예산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기여금은 8억9천300만 달러(약 1조859억원)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았다.

같은 기간 WHO의 전체 예산이 56억2천360만 달러(약 6조8천383억원)였던 점을 고려하면, 미국이 지원을 중단할 경우 WHO로서는 엄청난 규모의 예산 부족이 발생하는 것이다.
 
 ▲미국, 세계보건기구(WHO)탈퇴선언(사진제공=연합뉴스)

WHO와 미국의 관계 악화는 지난해 말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병이 처음 보고됐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WHO의 수장인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사태 초기부터 중국을 두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중국은 그가 사무총장 자리에 오르는 데 큰 역할을 했고 WHO에 대한 통 큰 지원도 약속한 나라다.

그는 중국 내부에서조차 당국의 초기 대응 실패를 지적하는 데도 올해 1월 28일(이하 현지시간) 베이징에서 시진핑(習近平) 주석 등 중국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중국의 능력을 믿는다고 말했다.

당시 한쪽 다리를 살짝 굽히며 악수하는 모습이 마치 황제를 알현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튿날 WHO 본부가 자리한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국제사회가 중국의 조처에 감사와 존경을 보내야 한다고까지 했다.

이 같은 언행에 국제 여론은 악화했고 이후 미국이 코로나19의 최대 피해국이 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급기야 WHO가 중국 편을 들고 있다며 초강수를 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금 지원 중단을 예고하자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한때 "더 많은 시신 포대를 원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강하게 응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제 기구 수장의 발언으로는 적절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었고, 이후 그는 "미국은 WHO에 오랫동안 관대한 친구였다" "내가 알기로 그(트럼프 대통령)는 지원을 해주는 사람" "글로벌 보건에 대한 미국 정부의 기여와 관대함은 엄청났다"는 발언을 잇달아서 하며 틀어진 관계를 개선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다행히 WHO에 자금을 보태줄 재단이 최근 마련됐지만, 그간 미국이 WHO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타격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물론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절연 선언은 오는 11월 대선을 염두에 둔 선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부실하고 안이한 대응으로 코로나19 피해를 키웠다는 내부 비판을 피하기 위해 WHO에 화살을 돌렸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진짜 속내를 차치하더라도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사태에서 WHO와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이 보인 대응에 국제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WHO가 이런 논란에 휘말리는 사이 잃어버린 가장 큰 것은 바로 희생자들의 생명이다.

실시간 통계 사이트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3일 기준 코로나19 누적 사망자는 40만 명에 육박했다.
누적 확진자 수도 64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특히 코로나19가 먼저 확산한 아시아와 유럽 등 북반구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현재는 그 기세가 주춤한 상태이지만, 중남미 등 남반구에서는 무서운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마이클 라이언 WHO 긴급준비대응 사무차장은 1일 "(중남미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아직 정점에 도달했다고 믿지 않으며 현재로서는 그게 언제가 될지 예측할 수 없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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