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살 어른' 보호종료아동,
세상서 만난 가족 통해 '사랑' 깨달아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지냈던 가족을 돌아보고 소중함을 깨닫는 가정의 달 5월. 이때만 되면 유독 힘겨운 사람들이 있다. 보호기간이 끝나 '홀로서기'에 나선 '보호종료아동'들이다. 어느 때보다 추운 봄을 혼자 이겨내야 하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주는 어른들이 있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가족이 되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사랑으로 맺어진 가족, 보호종료아동을 위한 커뮤니티 케어 센터 ‘청포도’는 사회에 바람직한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왼쪽부터) 서로에게 아버지와 딸이 되어준 김지희 씨, 김충헌 센터장, 최유정 씨의 모습 ⓒ데일리굿뉴스
 
세상에 내몰린 보호종료아동
 
지난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사랑을 받은 KBS2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어린 시절 엄마에게 버림받은 고아이자 미혼모인 동백이의 삶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공감과 응원을 끌어냈다.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이때부터다.
 
만 18세가 되어 보육시설에서 퇴소해 세상 밖으로 나오는 보호종료아동은 한 해 평균 약 2,600명. 누군가는 이들을 '열여덟 어른'이라고 표현한다. 만 18세지만 아직 민법상 미성년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사회에 나와서 부딪히는 장애가 많다. 본인 명의로 집을 구하거나 휴대전화를 개통할 수 없다. 주변에 보호자가 없다 보니, 결국 명의를 도용하는 등 불법 행위를 저지르거나 범죄에 노출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재정적 지원에 반해 인지적·정서적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퇴소 후 자유를 만끽하는 것도 잠시, 보호종료아동 대부분이 사회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해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돈을 관리하는 지식이 없다 보니 자립정착금 등 1,500만 원이 넘는 지원금을 탕진하거나 사기를 당하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례도 잦다. 심지어 연락이 두절되는 보호종료아동은 40%에 달했다.
 
 ▲축구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청포도 식구들. 지금도 매주 주말마다 축구 모임을 하고 있다.(사진제공=청포도)

축구 모임에서 시작된 '어쩌다 가족'
 
보호종료아동 김지희·최유정 씨(22)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보호종료 3년 차를 맞은 이들은 같은 시설에서 자랐다. 김 씨는 태어날 당시 강남의 한 빌라 지하에서 탯줄이 실에 묶인 채 발견됐다. 출생연도와 태어난 시간이 적힌 메모만 있었다. 그나마 최 씨는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라고 하니 나은 편이다. 그렇게 시작한 시설 생활, 마냥 힘든 것만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도 나름 즐겁게 보냈다. 운동을 잘했던 터라 인기도 많았다.
 
문제는 퇴소 후였다. 자유라는 기쁨은 이내 막막함으로 덮였다. 최 씨는 "시설에서는 음식 배달도 안 되고 통금도 있고 안 되는 것이 많았다"며 "퇴소를 앞두고 두려움도 있었지만 자유를 향한 마음이 더 컸던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곧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최 씨는 "당장 집을 구해야 하는데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주거지원 신청을 놓치고 월세를 얻었다"며 "당시 전·월세 개념부터 관리비, 공과금 등에 대해 전혀 몰라 막막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생활고였다. 이들 역시 목돈을 다 쓰는 데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김 씨는 퇴소 전부터 무역회사에 다니며 모은 적금과 퇴직금까지 1,600여만 원이 넘는 돈을 3개월 만에 흔적도 없이 다 써버렸다. 마땅한 직업이 없는 상황에서 통장 잔고까지 비어버린 첩첩산중의 상황.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만한 어른은 없었다. 그때 청포도 김충헌 센터장(40)을 만났다.
 
첫 만남은 축구 모임이었다. 김 센터장은 "대학교 동아리 선후배와 주말마다 축구를 하는데 마침 한 친구가 시설 동생들이 축구를 좋아한다며 모임에 데리고 왔다"며 "아이들과 주말마다 축구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그들의 이야기를 은연중에 듣게 됐다"고 말했다. 난생처음 들어본 보호종료아동의 삶은 충격 그 자체였다.
 
김 센터장은 "자유를 갈망하고 추구하는데 거기에 적절한 울타리가 없다"며 "그러다 보니 자신들도 모르게 삶이 굉장히 나태하고 생각 이상으로 많이 무너져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대로라면 2~3년 안에 사달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 어른의 입장에서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김 센터장과 대학 동아리 선후배들이 보호종료아동을 위한 커뮤니티 케어 센터 '청포도'(청춘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겠습니다)를 설립한 계기다.
 
김 센터장과 청포도 어른들은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거리를 좁혀 나갔다. 아이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김 씨는 "축구를 하면서 집에 가서 저녁밥을 먹게 되고 잠도 자게 됐다"며 "그렇게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다"고 말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이후였다. 어느 순간 김 센터장 부부에게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더라는 김 씨. 그는 지금은 아버지, 어머니라는 호칭이 더 자연스럽다고 덧붙였다.
 
물론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아이들과의 갈등은 부지기수. 무엇보다 가장 큰 어려움은 어른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 하는 아이들의 마음이었다.
 
김 센터장은 "아이들이 '어른들을 원망해요'라고 표현하지 않지만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게 어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그런데 그런 어른들이 나를 가르친다는 것이 사실 잘 납득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감정 표현이나 예의 등의 미숙도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였다. 특히 감정 기복이 심해서 잘 지내다가 돌연 화를 못 이겨 욕을 한다거나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는 등의 공통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이 조금씩 이해됐다. 나아가 아이들의 상처와 아픔을 만져주고 동시에 인생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런 노력은 또 다른 청포도로 열리고 있다. 김 씨와 최 씨는 앞으로 세상에 나올 후배 보호종료아동에게 자신들이 받은 사랑을 나눠주고, 그들이 마음 털어놓고 기댈 수 있는 어른이 되겠다는 꿈을 밝혔다.
 
축구 모임에서 시작한 관계는 그렇게 가족이 되고 있다. 서로의 아픔과 부족함을 채워주며 많은 것을 배운다는 청포도 식구들. 그들은 서로를 통해 '사랑'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청포도 가족들은 헌혈, 베이비박스, 유기견 보호소 등 매월 여러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헌혈 봉사활동에 참여한 청포도 식구들 모습 (사진제공=청포도)

제2, 제3의 청포도 열려야
 
최근 보호종료아동 문제가 주목받으면서 김 씨와 최 씨처럼 안정적인 사회 정착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먼저 경제적·심리적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보호종료아동이 자립하기에 현재 지원 시스템이 미흡하다는 게 이유다.
 
김형모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같은 목소리다. 김 교수는 "자립수당을 5년까지 확대 지원하고 지역사회에서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주기적인 상담이나 심리적·정신적 지원 등을 체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다 근본적인 대안도 나온다. 보호종료아동뿐 아니라 보호아동을 위해선 원가정 복귀나 입양 등을 통해 가정의 울타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향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대부분이 해체가정이나 학대·유기 아동이기 때문에 원가정 복귀는 실질적으로 어렵다는 목소리가 크다. 입양 역시 마찬가지다.
 
김 교수는 "국내 입양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정부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계속 감소하고 있다"며 "원가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은 아이들을 본인의 자식으로 받아들여 키우는 것은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입양이 가장 바람직한 대안 중 하나라는 데는 공감했다. 그러면서 보호종료아동을 입양한 배우 진태현·박시은 부부를 좋은 사례로 꼽았다. 아이들에게 관계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입양이 사실상 쉽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가 제대로 된 부모 역할을 하고 있는지 먼저 고민해봐야 한다고 정 교수는 강조했다.
 
정 교수는 "경제적 지원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아이들이 쉽게 상의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누군가 있어야 하는데, 연락할 데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립을 홀로 서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며 아이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사례관리를 할 수 있는 역할이 우선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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