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목사 ⓒ데일리굿뉴스
한낮에는 가만히 있어도 이마에 땀이 흐르는 것이 벌써 여름이 시작된 것 같다. 올해는 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불청객은 우리에게서 생명이 피어나는 생기를 감상할 수 있는 봄을 빼앗아갔다.

학생들에게서는 설레는 새 학기를, 많은 직장인들에게서는 일터를 빼앗았고, 어떤 이들에게는 소중한 가족과 친구를,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을 빼앗아갔다. 코로나19는 그렇게 우리에게 희망찬 봄을 빼앗아가고 그 빈자리에 절망과 슬픔을 두고 갔다.

이제 우리는 길었던 겨울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무너진 삶의 자리를 다시 세우고 일상을 회복하며 내일을 향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그런데 절망의 깊은 잠에 빠져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슬픔과 절망에 빠져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직장을 잃어버리는 절망 등은 쉽게 정리할 수 있는 고통이 아니다. 고통을 그냥 잊어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아프고 힘들어도 이젠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절망의 자리에 머물러 있을수록 상처는 아물지 않고 더욱 벌어지게 된다.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보다 더 큰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 꿈에서 깨어났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꿈속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다. 절망을 극복했다고 생각하고 허황된 미래의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 막연히 기대를 가지고 미래를 낙관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우리 인생의 고난은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생각만 하고, 꿈만 꾸는 사람의 삶에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과거의 꿈에 갇혀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과거의 성공과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의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더욱 효율적인 새로운 방법이 나오고, 과거의 오류들이 바로 잡히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의 방법을 고수하고, 잘못된 가치에 연연한다. 영광의 과거가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커다란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은 꿈을 꿀 때가 아니라, 꿈에서 깨어날 때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는 많은 것이 바뀔 것이고 그것에 적응하지 못하면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보다 더 큰 곤경에 빠지게 될 것이다. 변화된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구체적인 목적과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요셉을 꿈의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맞다. 그는 꿈의 사람이다. 17세 때 하나님으로부터 꿈을 받은 요셉은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면서 그 꿈을 이뤘다. 그러나 그는 꿈의 사람이지, 꿈에 갇혀 있던 사람은 아니었다. 만약 요셉이 막연히 꿈이 이뤄질 것만을 기대하며 아무것도 행하지 않았다면 그는 애굽의 노예로 비참한 인생을 살다가 삶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그는 꿈에서 깨어나 그 꿈이 무엇인지, 어떻게 이뤄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인내하고, 준비하고 실력을 쌓았다. 그랬기에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을 수 있었다. 꿈의 성취는 꿈만 꾸는 사람이 아니라 꿈에서 깨어나 행동하는 사람만이 맛볼 수 있다.

이제 꿈에서 깨어나자. 꿈에서 깨어난 자만이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 절망의 자리에서, 과거에서, 허황된 기대에서 깨어나 미래를 준비하자. 경직된 예배와 잘못된 물량주의, 개 교회 간의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거의 영광에 기대지 말고 새로운 방법으로 새로운 세대의 부흥을 이루어가자.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꿈을 성취한 요셉처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꿈을 성취하는 한국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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