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을 파고드는 전염병
▲정재영 교수ⓒ데일리굿뉴스

지금 우리 사회는 코로나 19의 여파로 그 어느 때보다 불안과 염려에 휩싸여 있다. 작년 12월 중국에서 처음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뒤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이 호흡기 감염질환은 다소 진정기에 들어선 중국과 달리 한국을 비롯한 이탈리아와 전 세계로 확산되는 추세이다.

초기에는 비교적 통제가 잘 되었고 확진자가 30명 이내로 유지되었으나 신천지 신자 중에 확진자가 나오면서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한 외국 기관에서는 3월 20일에 가서야 바이러스 확산이 절정에 이르고 확진자가 1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하였는데 지금 추세라면 이 예측이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사실 코로나 19와 같은 전염병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질병이다. 이미 사스와 신종플루, 그리고 메르스의 발병으로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홍역을 치렀고 인수공동 전염병의 위험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예고된 바이다. 이미 인류 역사 속에서도 다양한 전염병이 발생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기도 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전염병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코로나 19가 확산되면서 우리 사회는 그 치부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정치인들은 이를 정쟁화 하면서 서로를 비난하기 바쁘다. 최근에는 의학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연예인들까지 나서서 정부와 의료진을 비난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물론 국민 누구나 자신의 의사 표명을 할 수 있고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 대해서 감정 표현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뚜렷한 근거도 없이 비방을 일삼거나 지나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불안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최근에는 언론까지도 이러한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키고 있는 양상이다. 사회 비판의 기능을 담당하는 언론에서 잘못된 행정에 대해서 문제를 지적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감시의 역할을 하는 것은 마땅한 역할이다.

그러나 사실을 보도하고 개관적인 분석을 하기보다는 똑같은 문제를 반복적으로 주장할 뿐만 아니라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보도를 연일 다루는 것은 언론 본연의 역할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많은 의료진과 공무원들의 수고에도 물구하고 서로에 대한 불신만 더욱 커지고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쉽게 사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신뢰의 중요성

독일의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은 그의 저서 ?위험사회?에서 성찰과 반성이 없이 근대화를 이룬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커다란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험을 몰고 왔다고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위험은 성공적인 근대가 초래한 딜레마이며, 경제가 발전할수록 위험요소도 증가하기 때문에, 후진국이 아니라 오히려 선진국에서 위험요소가 더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이것이 예외적 위험이 아니라 일상적 위험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때 크게 이슈가 되었고,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우리 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증대되어 이 이론이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이러한 일상적 불안감은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과학과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의 근본 문제인 불확실성으로부터 오는 불안은 크게 해소되지 않기 때문에 위험 요소는 여전히 항존하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현재 상태에 대해서도 인간이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는 불안감이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과 자연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코로나 19와 같은 전염병이 가져오는 불확실성은 더 큰 공포로 다가오게 된다.

이러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람들 사이의 신뢰가 중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누구를 신뢰할 수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위험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은 절대로 혼자가 아니며 협력과 연대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서 불안감을 해소하고 공동의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문제 해결에 다가갈 수 있다. 사회학자인 로버트 퍼트남은 사람들 사이의 신뢰에 터한 사회자본은 특정 목표를 달성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구성원들이 서로 신뢰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보이는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많은 것을 성취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신뢰와 사회적 네트워크가 활성화 된 곳에서는 사람들을 다양한 파트너들과 연결시켜주고, 고급 정보들을 제공함으로써 경제적으로도 앞서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신뢰감은 사람들에게 절대로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주며, 시민적 연대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은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는 정부에서 할 수 없는 사회 곳곳의 문제를 해결하고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그래서 사회 자본이 높은 지역에서는 공공장소도 더 깨끗하고 사람들도 더 친근하며 길거리는 더 안전하게 된다.
 
신뢰 회복을 위한 교회의 역할

이렇게 신뢰 회복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이다. 교회는 스스로 공동체임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빈번한 모임과 교제를 통해서 친숙성을 높임으로써 서로에 대한 신뢰감을 높일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그런 공동체의 일원인 기독교인들은 서로에 대해 깊은 신뢰를 할 수 있고, 공동체 활동은 이런 식으로 기독교인들이 시민으로서 연대하며 참여할 수 있도록 북돋을 수 있다. 특히 자기 희생의 규범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사회가 혼란하고 어려울수록 사회 곳곳에서 공적인 책임과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전염병의 확산 속에서 주일 예배를 지킬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에 대한 신학적 토론이 벌어지고 있지만, 주일 예배를 지키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신앙 고백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종교 의례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신앙고백이 우리 사회에 대해서 어떤 의미를 안고 있고 실제적인 책임의식으로 표현되느냐 하는 것이다. 특정 신앙을 가지는 사람들끼리의 폐쇄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야의 본을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앙의 전통과 그 정수를 지키면서도 이 시대와 사회의 요청에 응답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국 교회 안에 있는 신앙 공동체들은 깊이 고민해야 한다. 개교회주의는 단순히 각자 알아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외부의 지시에 일방적으로 따르기보다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여 일치된 견해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획일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사고하여 창조적인 합의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염려에 낙심하고 있는 이 시기에 신뢰와 연대를 통해서 난국을 이겨낼 수 있도록 모든 신앙공동체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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