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신앙
한국전쟁 당시 염암 일대 87명 순교
영암지역 교회, '순교신앙' 계승 협력


전라남도 영암 일대에는 한국전쟁 당시 순교자의 희생을 밑거름 삼아 세워진 교회들이 많다. 전쟁 발발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순교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후손들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본지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죽음 앞에서도 굳건했던 순교 신앙을 기리기 위해 전국에 있는 순교지를 재조명한다.
 
 ▲한국전쟁 당시 희생당한 유해를 묻은 공동묘. 영암지역 8개 교회 순교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순교비.ⓒ데일리굿뉴스

참혹한 전쟁의 비극, 무자비한 희생 

월출산의 고장 전라남도 영암. 순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왕인박사 유적지 부근에 가면 큰 무덤 하나가 보인다. 한 날 한 시에 목숨을 잃은 수십 명의 유해가 나란히 묻힌 이 묘소는 한국전쟁이 이 땅에 남긴 상흔 중 하나다.

무덤에 얽힌 사연은 영암지역 교회들의 숭고한 역사로 전해져 오고 있다.

1950년 10월 5일 영암까지 내려온 인민군은 초가 주막에 구림교회 성도 19명을 몰아넣고 불을 지른다. 조그마한 초가 사방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바깥에서는 인민군들이 총부리를 겨눈다. 화염 속에서는 불신앙 대신 순교를 택한 성도들의 찬송소리가 흘러나온다.

당시 15살, 구림교회에 다녔던 김덕중 원로목사는 그날의 기억이 뚜렷하기만 하다.

김 목사는 “지금은 교회가 100개지만, 그 때는 8개 밖에 없어 4km 떨어진 구림교회까지 와서 예배를 드렸다”며 “당시에 가까스로 살았지만 인민군들이 마구잡이로 잡아가려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구림교회 전경 모습. 죽는 순간까지 신앙을 지킨 구림교회 성도들을 그린 회화작품.ⓒ데일리굿뉴스

순교신앙의 맥 잇는 영암의 교회들

순교의 피는 구림교회만 물려받은 게 아니었다. 6·25전쟁의 발발은 평화롭던 영암 땅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한국전쟁 당시 영암지역에 남은 상처들은 남도 땅 어느 곳보다도 깊고 컸으며, 교회가 당한 참화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영암의 성도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한 마디만 하면 살려 준다”는 인민군의 협박에도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잃지 않았다. 그렇게 영암읍교회와 상월교회, 매월교회 등 영암지역 8개 교회에서 87명의 성도들은 믿음을 가졌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후예들은 교회를 재건하고 순교비를 세웠다. 순교의 역사를 기리기 위한 순교자 기념관도 건립했다. 기념관에는 한국전쟁 당시 각 교회의 유물과 순교사적을 소재로 한 회화 등을 전시 중이다.  

영암군기독교순교기념선교사업회 김정회 이사장은 “영암군에는 순교의 씨앗으로 세워진 8개 교회가 있다”면서 “순교의 신앙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순교기념관을 설립해서 운영하고 있고 향후 더 많은 믿음의 형제들이 참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순교 직전까지 믿음을 지킨 순교자들의 담대한 신앙은 오늘날 교회에 귀한 신앙유산을 남겼다.

지금도 영암의 신앙 후손들은 해마다 6·25가 돌아오면 순교자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당시의 참상을 회고한다. 그리고 순교자의 피로 지킨 교회의 역사와 신앙의 자부심을 가지고 순교신앙의 맥을 잇고 있다.

구림교회 김경원 담임목사는 “순교의 밀알과 순교의 피가 없었다면 영암지역 교회들이 성장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면서 “순교를 토대삼아 아름다운 교회로 성장하고 있어 감사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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