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가 신천지 증거장막성전(신천지)으로 떠들썩하다. 신천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주요 감염 집단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현재 코로나19 확진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신천지와 관련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한국사회의 트라우마로 남은 세월호 참사를 떠오르게 한다. 구원파의 실체를 드러낸 세월호 참사는 이단·사이비 집단이 종교를 넘어 사회적으로도 얼마나 큰 폐해를 끼치는지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이단·사이비 집단은 오랜 시간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공생해왔다. 특히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격동의 시대'에 난립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정치권과 유착하며 교세를 확산시켰고, 어김없이 큰 물의를 일으키며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분열시켰다. 더욱이 그때마다 척결되지 못하고 '용두사미'로 마무리되는 모양새는 데자뷔다. 신천지나 구원파처럼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며 공동체의 존립을 뒤흔든 이단·사이비 집단의 대표적 폐해를 살펴본다.
 
▲사회적 물의 일으킨 국내 주요 이단·사이비 집단 ⓒ데일리굿뉴스, 그래픽 김동현 기자
 
백도교(白道敎), 교도 재산 갈취에 살해까지
 
신흥종교인 동학 종파 중 하나다. 구한말 어지러운 틈을 타 홀연히 등장했다. 교주 전정운(전정예)은 천재지변으로 인류가 멸망하지만 백도교를 믿으면 신선의 땅에서 불로장생하게 된다는 등 감언이설로 교도를 끌어모았다. 은밀하지만 적극적인 포교 활동으로 교도수가 1만여 명을 넘었다.
 
교세가 확산하는 동안 전정운은 교도들에게 재산을 갈취해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다. 불로장생을 꿈꾸던 전정운은 1919년 51세로 병으로 숨졌다. 그의 사후 11년 뒤 자신의 첩 4명을 생매장하고 교도 8명을 살해하는 등 악행이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백도교는 소멸하는 듯했지만, 최악의 사이비 집단 백백교로 재건한다.
 
백백교(白白敎), 희대의 살인사건…외신에도 실려
 
1937년 4월 13일 <조선일보> 호외에 조선이 발칵 뒤집혔다. 신흥 사이비 집단 교주와 간부가 수백여 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것. 희대의 살인사건 '백백교 사건'이다. 백백교는 전신 백도교의 정신을 이어받아 종말론을 내세웠다. '한 사람(교주)의 흰 것으로 천하를 희게 하자'는 중심 교리로 백백교가 앞으로 세상을 통치한다고 주장했다. 나라를 잃고 핍박받던 수많은 조선인이 미혹됐고, 교세는 빠르게 확장됐다.
 
교주 전용해는 아버지 전정운보다 더 극악무도한 인물이었다. 교도들에게 전 재산을 상납하도록 요구했고, 부인과 딸을 시녀로 바치게 해 성폭행했다. 수십여 명의 여성을 첩으로 거느리며 성적으로 학대했고, 싫증이 나면 죽이는 것을 일삼았다. 심지어 교도가 늘자 먹여 살리기 어렵다는 이유로 살해하기도 했다. 그렇게 살해된 사람만 460여 명이 넘었다.
 
백백교 사건은 당시 큰 충격이었다. 언론은 연일 백백교 관련 가십 기사를 쏟아냈다. 외신에서도 보도할 정도였다. 하지만 결과는 용두사미. 4년 뒤 열린 선고 공판에서 간부들에게 사형이 선고됐지만, 실제 집행됐다는 기록은 없다. 이들 대부분은 해방 후 출옥해 잔존세력을 만들거나 다른 사이비 집단에 흘러 들어갔다. 특히 도주한 교주 전용해는 몇 달 후 사체로 발견됐는데, 시신 훼손으로 신원 확인이 되지 않아 자살로 위장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용화교(龍華敎), 교리 빙자해 여성 500여 명 간음
 
범죄자 서백일이 창시한 사이비 집단이다. 증산 강일순을 신앙대상으로 삼았다. 일각에서는 교주 서백일을 두고 백백교 잔당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용화교 역시 광복 즈음 정세가 혼란한 틈을 타 교세가 확산했다. 중을 자칭하던 서백일은 전북 김제시 모악산에 용화사라는 절을 지어 본부로 삼고, 여자들을 출가시켜 여수좌라고 불렀다. 여수좌는 500여 명에 달했는데 사실상 서백일의 첩이었다. 서백일이 교리를 빙자해 여수좌들을 간음하고 금품을 갈취한 것이 밝혀져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오대양, 사채 170억 원…집단자살로 마무리
 
구원파 교도였던 교주 박순자가 1984년 자신을 추종하는 교도들을 데리고 나와 설립한 공예품 제조업체이자 사이비 종교단체다. 오대양은 사회사업까지 손을 뻗쳤는데, 실은 교도들과 자녀들을 수용해 통제하고 세뇌하는 집단 시설에 불과했다. 이곳에서 '반성의 시간'이라는 명분으로 교도들을 잔혹하게 구타했다. 살해와 암매장이 있었을 거라는 의혹도 있다.
 
수해와 6월 항쟁으로 어수선했던 1987년 8월, 오대양은 사업 실패로 인한 손실을 메우기 위해 교도들로부터 돈을 끌어오게 했다. 그렇게 빌린 사채만도 170억 원. 채권자들의 독촉 및 고소, 여기에 경찰과 언론의 압박까지 더해졌다. 얼마 못 가 박순자는 31명의 교도와 집단자살한 채로 발견됐다. 일각에선 교도들의 집단타살과 구원파와의 관련 의혹을 제기했다.
 
아가동산, 재산과 노동착취…교주는 건재
 
1996년 사이비종교의 살인·암매장 사건이 드러나면서 큰 파장이 일었다. 아가동산 사건이다. 교주 김기순은 경기도 이천에 4,000평 남짓 땅을 사 아가농장을 세우고 '신나라'로 선포했다. 나체 댄스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주현교회(삭발교) 교주 이교부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교회 해산으로 갈 곳이 없어진 삭발교 교도까지 흡수해 덩치를 불렸다. 김기순은 성경·찬송의 '예수'를 본인을 칭하는 '아가야'로 바꾸고, 자신을 신이라고 주장했다.
 
아가동산은 철저한 공동체 생활을 통해 교도들에게서 재산과 노동을 착취했다. 교도들은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공장에서 CD 및 테이프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교도가 과로사하고 폭행 및 살인·암매장당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실제로 교도 3명을 살해한 것이 발각돼 핵심 간부 4명이 구속됐다. 김기순은 조세포탈죄와 횡령에 대해서만 유죄가 인정돼 징역 4년과 벌금 56억 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무혐의 처분과 함께 보석으로 석방됐고, 현재 신나라레코드와 함께 건재하다.
 
영생교(승리제단), 경찰 폭행·감금에 교도 암매장까지
 
밀실(密室)과 전도관 출신인 조희성이 1981년 창설했다. 기독교와 불교, 민간신앙까지 혼합한 사이비 집단으로 '살아 영생'이라는 교리를 표방한다. 기업 근화실업을 세워 교도들을 동원해 강제노역과 물품을 팔게 해 물의를 빚었다. 심지어 영생교를 수사하려던 경찰들을 폭행하고 감금하기도 했다.
 
특히 영생교에는 배교자 처단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이 교도들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사실이 확인돼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지난 2003년에는 경기도와 전북에서 영생교 관련 실종자로 추정되는 유골이 연이어 발견되면서 다시 한번 범죄행각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그 밖에도 △동방교 △장막성전 △기독교복음선교회(JMS) △다미선교회 △구원파 △신천지 등 이단·사이비 집단의 폐해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다. 
저작권자 © 데일리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