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봉 목사 ⓒ데일리굿뉴스
나는 비전과 관련하여 네 종류의 사람을 살펴보고 있다. 하나님의 비전이 있어야 교회가 하나님이 의도하신 방향으로 나아갈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한국교회가 처한 영적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서도 하나님의 비전을 쫓아 사는 삶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비전의 성격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기초한 네 종류의 사람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방랑자. 하나님의 비전을 보지 못하는 사람.
겁쟁이. 하나님의 비전을 보지만 대가 지불이 두려워서 가지 못하는 사람.
성취자.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온 삶으로 달려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비전을 이룬 사람.

리더.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온 삶으로 달려가 하나님의 비전이 그를 통해 성취될 뿐 아니
라, 다른 사람들을 그 자리로 인도할 수 있는 사람.


지난번에는 방랑자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하나님의 비전을 보지 못하는 방랑자는, 마태복음 13장의 씨 뿌리는 비유에서 나오는 길가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은 겁쟁이다. 겁쟁이는 하나님의 비전을 보지만 대가 지불이 두려워서 가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비전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많은 대가 지불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이루셨지만 그 비전을 위해 모세가 치러야 했던 대가는 결코 적지 않았다. 또한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하는 하나님의 비전에 동참하면서 수많은 대적과 방해를 극복했던 느헤미야는 어떠한가. 무엇보다, 인류의 구속이라는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 예수님께서 치루신 대가를 생각해 보라. 하나님 앞에서 크고 중요할수록 그 비전이 성취되기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 영적인 공격과 방해가 클 수 있다. 그런데 겁쟁이는 그 대가 지불이 두려워서 하나님의 비전에 동참하지 못한다.

또한 겁쟁이는 씨 뿌리는 비유에서의 돌밭과 가시밭과 같은 사람들이다. 돌밭은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만 말씀으로 인하여 핍박이 오면 말씀을 버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가시밭은 말씀을 잘 받아들이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에 대한 유혹 등이 내려지지 않아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 둘은 그 성격이 약간 다를지 모르지만, 두 가지 면에서 비슷하다. 첫째,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둘째, 그들은 말씀의 결실을 맺기 위해 세상 사랑, 돈에 대한 집착, 세상의 목적이 내려져야 했을 때 그것을 원치 않았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소위 말씀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들을 경험하는 일에는 매우 열정적이었지만, 주님을 따르는 대가 지불은 원치 않았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겁쟁이였다.

겁쟁이, 돌밭과 가시밭과 같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말씀을 깨닫는 자들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들은 깨닫지 못한 자들, 하나님의 비전을 보지 못한 자들이었다. 만약 그들이 실제로 본 자들이었다면 그들은 좋은 밭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로부터 온 생명의 떡이라며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어렵다면서 예수님을 떠나 다시는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다. 그것을 보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요 6:68-69). 그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이 비전을 본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예수님 안에 있는 '값진 보화'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비전을 진정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을 따르는 대가를 지불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이 의도하신 모습으로 회복되어지고, 다가오는 하나님의 부흥의 길을 예비하는 "회복과 부흥"의 비전을 보이셨다.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 교회를 세워감에 있어 재정적인 압박, 환경적인 어려움, 하나님의 길과 비전을 보지 못하는 성도들의 비협조, 대적 등 수많은 어려움과 공격에도 나와 아내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선명하게 보여진 하나님의 비전 때문이었다. 내 눈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고 계신 일 가운데 한 나라도 바꿀 수 있을 만한 소중한 것, 우리 부부 인생 전부를 드려도 좋을 만큼의 소중한 것이 보였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우리가 죽기 밖에 더하겠느냐?"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며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었다.

교회의 회복도 그렇다. 어떤 목회자들은 하나님 중심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가르치면 교회가 아름답게 세워지고,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회복될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몇 가지 성경적인 진리를 전한다고 회복되지 않는다. 목회자부터 성도들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비전은 성취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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