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재난지역 수색구조 40년 민간 수색구조단
알바이주 MOU…재난대응센터·선교센터 설립 추진
지난해 12월 24일, 성탄절과 연말 분위기에 모두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서울 송파구의 한 사무실에서는 중년 남성 한 무리가 짐을 꾸리느라 분주했다. 베레모를 깊게 눌러쓰고 정갈하게 입은 단체복에서 비장함이 느껴졌다. 흡사 전투를 준비하는 장수의 모습 같았다.
국내최초 수색구조단 '911S&RT'
지난해 12월 초 필리핀을 강타한 태풍 간무리로 현지 피해 소식이 전해졌다. 이 대표는 급하게 구조대를 꾸렸다. 출국 전 또 다른 대형태풍 판폰이 필리핀에 상륙했다는 소식에 대원들은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안성찬 대원은 ”우리의 작은 도움이 그들에게는 꼭 필요할 수 있다“며 ”소집 명령에 일말의 고민 없이 바로 참가했다“고 말했다.
이번 팀은 주로 40~50대 노련한 베테랑들이 주를 이뤘는데 그 가운데 앳된 소녀가 눈에 띄었다. 구조단인 아버지를 따라 7살 어린 나이부터 S&RT에 합류한 최연소 대원이다. 필리핀에 거주하는 서세형(17세, Reach International School)양은 S&RT 필리핀 방문 소식에 현지에서 합류했다. 전체 일정의 영어통역을 맡았다.
태풍 직격탄 맞은 필리핀…도움의 손길 절실
S&RT가 방문한 곳은 필리핀 알바이 주의 중심 도시인 레가스피시다. 번화가에서 조금 벗어나면 빅토리 빌리지라는 빈민촌이 나온다. 약 4,000 가정이 밀집해 있는 곳인데 연이은 재난으로 마을은 쑥대밭이 됐다. 지난해 초 대형 화마가 덮쳐 100여 가옥이 사라졌고 1년 가까이 복구가 되지 않았다.
성탄절 직전 잇따른 태풍으로 가옥이 다수 파손된 상태. 집을 잃은 주민들은 이웃에게 신세 지고 있었다. S&RT는 무너진 집들을 살핀 뒤 현지 사역 중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보수에 필요한 자재들을 공수해 보수공사를 시작했다. 뜯겨나간 지붕을 막고 무너진 집을 바로 세웠다.
이선주 선교사(비콜조이처치)는 “이곳 주민들의 하루 생활비는 400페소, 우리 돈 1만 원 정도다”며 “그날그날 번 돈을 조금씩 모아 집을 보수 해보지만 여의치 않은 형편이다. 이번 S&RT의 활동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S&RT는 해충의 번식을 막기 위해 방역기를 돌렸다. 덥고 습한 날씨 탓에 모기가 극성이었다. 이곳 아이들은 모기에 물린 상처를 비롯한 철과상이 많았는데 청결하게 관리되지 않았다. 상처는 덧나고 곪아 이내 고름이 찼다. S&RT는 온갖 오염물질이 뒤엉켜 살 속에 파묻힌 상처를 치료했다.
정선빈 대원(응급구조사)은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상처 주변을 청결하게 만들고 약을 발라주는 것만 해줄 수밖에 없어 가슴이 아프다”며 눈물을 훔쳤다.
재난·위기대응센터 설립…현지복음화의 전진기지로
S&RT의 구호 활동은 해당 지역 주민들 뿐만 아니라 필리핀 정부의 마음도 움직였다. 알바이 주 알 프란시스 비차라(AL FRANCIS C. BICHARA) 주지사는 S&RT를 초청해 감사의 뜻을 표하며 감사장을 수여했다.
이 자리에서 S&RT와 알바이 주정부는 피해 현장 복구 방안을 비롯해 향후 재난 방지 대책에 대해서도 의논했다. 특히 S&RT는 일방적인 원조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며 사전에 대응할 수 있는 교육시설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 대표는 “이 지역은 백두산보다 높은 활화산이 존재하고 상습적으로 태풍과 각종 재난이 빈번한 곳”이라며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교육과 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비차라 주지사는 “이번 재난 피해 지역에 대한 S&RT의 헌신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시설 설립을 위해 부지를 제공하고 필요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열흘간 구호활동을 펼친 S&RT는 빅토리 마을을 잇는 다리 공사를 끝으로 모든 일정을 마쳤다. 이 대표는 "이번 협의는 전세계 상습재난지역 센터설립의 기점이 될 것"이라며 "교육을 넘어 현지 복음화를 위한 선교의 전진기지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구조단은 후속 구호물품으로 이번 달 말에 의류 5천 벌과 의약품 등 총 1t의 구호 물품을 알바이 주에 추가로 보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