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목사 ⓒ데일리굿뉴스
2019년은 어느 때보다 사람들이 사회 정의 실현을 강력하게 요구했던 한 해였다. 사실 사회 상류층 중 일부가 편법으로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유지 및 강화하고, 심지어는 그 지위를 자녀에게 상속하는 일은 한국 사회의 오랜 병폐 중 하나였다. 이에 대해 시민들이 정의 실현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시민 의식을 성장케 하는 일이자, 선진 사회를 구현하는 긍정적인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동안 사회적 불의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던 사람들이 최근에 이를 지적하기 시작한 것은 단순히 정의 실현의 열망이 커졌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이 정의 실현을 외치는 이유가 불의 자체를 향한 분노가 아니라, 부당하게 손해를 보았다는 피해의식인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든다.

그동안은 우리 사회의 경기가 어느 정도 잘 돌아갔기 때문에 사회의 부정부패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사람이 만족할만한 몫을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불황이 이어지자 사람들이 당연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받지 못하게 됐으며,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기득권의 불의에 분노를 터트린 것이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은 ‘능력대로 공정하게 대우를 받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문제는 개인의 능력을 ‘정당하게’ 가치를 매기는 것이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순수하게 개인의 능력과 성과만으로 대우를 해줘야 진정 정의로운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본연의 능력과 혈연, 지연 등 환경적인 요인으로 주어진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상에 스스로 모든 것을 이룬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마태복음 20장 1절에서 16절엔 품꾼을 고용하는 포도원 주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은 아침 일찍 나가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고 포도원에서 일할 사람을 뽑았다. 그리고 오전 9시, 12시 그리고 오후 3시에도 나가서 같은 값을 약속하며 일할 사람을 뽑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후 5시에도 나가서 똑같은 방법으로 사람을 뽑았다.
그리고 오후 6시가 됐을 때 아침 일찍 온 사람부터 오후 5시에 온 사람까지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 그러자 일찍 온 사람들이 포도원 주인에게 자신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것을 불공평하다고, 정의롭지 못한 것이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 일꾼들이 착각한 점이 있다. 오후 5시에 고용된 사람도, 아침 일찍 고용된 사람도 모두 포도원 주인의 은혜로 고용됐다는 것이다. 포도원 주인의 은혜가 없었다면 이들은 고용될 수 없었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 얻을 수 없는 것을 은혜로 누리며 살아간다. 그런데 은혜는 잊어버리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의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니 진짜 정의는 사라지고 분열과 다툼만이 남고 말았다.

물론 정의는 옳다. 그리고 반드시 실현돼야만 한다. 하늘의 정의가 하수와 같이 흘러야 한다. 하지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분은 은혜를 받는 자가 아니라 은혜를 주시는 분,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다. 정의를 외치기 전에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다.

행복한 인생은 능력대로 대우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누릴 때 이뤄진다. 나에게 주어진 것이 내 능력이 아니라 위로부터 주어졌다는 겸손함으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자. 은혜는 언제나 낮은 곳으로 임한다. 이제 연말이다. 겸손하게 마음을 낮춰 은혜를 누리고, 서로 은혜를 나눠 따뜻하고 행복하게 2019년을 마무리하자. 진정한 정의는 우리가 감사함으로 은혜를 나눌 때 하늘로부터 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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