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은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다. 특히 올해는 내부에서 곪던 갈등이 한꺼번에 터지며 증폭됐다. 서울 도심은 하루가 멀다 하고 열리는 각종 집회로 몸살을 앓았고,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좌우로 나뉘면서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2013년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당시 사회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이 연간 최대 246조 원. 6년이 지난 지금, 사회갈등으로 인한 막대한 경제적 손해는 짐작조차 어렵다.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갈등의 골을 짚어봤다.
 
 ▲2019년은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갈등이 격화된 한해였다. 전문가들은 갈등을 고조시킨 원인을 '공정'에서 찾았다.(사진제공=연합뉴스, 그래픽=김동현·박혜정 기자)
   
'갈등', 한국사회 둘로 갈라지다
 
"올해는 이념 갈등이 유독 피부로 와 닿던 한해였습니다. 생각이 조금만 달라도 좌, 우 양극단으로 나눠 공격하고 분열하는 것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_직장인 김 모 씨(남, 50)
 
지난 9월 서울 도심이 태극기와 촛불로 갈라졌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두고 반대자들과 지지자들 간 맞불집회가 열린 것. '광화문 태극기집회'와 '서초동 촛불집회'로 불리며 광장의 정치로 양분된 두 집회는 보수와 진보 간 갈등을 고조시키며 3개월이 지난 지금도 진행형이다.
 
한국사회의 갈등은 특히 올해 격해지는 양상을 띠었다. 갈등에서 촉발된 대규모 집회와 행진으로 전국 도심 곳곳이 몸살을 앓았고, '모 아니면 도'라는 이분법적 잣대가 한국사회 내 팽배해졌다. 갈등 요소도 과거 남북이나 지역 갈등에서 지금은 이념, 빈부, 세대, 성별 등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9일 발표한 '2019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는 이런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사회 주요 집단별 갈등 중 ‘진보와 보수’를 꼽은 응답자는 91.8%로 2016년 조사보다 14.5%p 상승했다. 이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85.3% △대기업과 중소기업 81.1% △부유층과 서민층 78.9% △기업가와 근로자 77.7% 등의 순으로, 모두 70%를 넘겼다.
 
최근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개봉하면서 다시금 논란이 불거졌던 '남성과 여성' 간 갈등은 3년 전 조사 때보다 11.8%p 상승한 54.9%로 집계됐다. 올해 처음 조사한 한국인과 외국인 간 갈등도 49.7%로 집계됐다. 특히 경제적 양극화에 대해서는 '심각하다'는 응답이 90.6%에 달해, 국민이 느끼는 갈등이 매우 크다는 것을 방증했다.
 
'불공정·불평등'이 낳은 병폐

"이번 정부가 공정과 평등을 외쳤지만, 특히 조국 전 장관 문제나 최저시급 인상, 젠더 등 어떤 문제에 대한 조치에서 오히려 또 다른 불공정을 낳는 모습을 보았어요. 유독 불공정과 불평등을 체감하고 깊이 생각했던 올 한해였죠."_ 직장인 최 모 씨(여, 31)
 
전문가들은 갈등을 고조시킨 원인을 '공정'에서 찾았다. 2016년 국정농단 사건으로 정권을 넘겨받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같은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각종 의혹, 이른바 '조국 사태'가 불거진 것.
 
공수 교대에도 특권층의 비리와 불공정 논란은 되풀이됐고, 현 정부의 핵심 가치인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는 크게 훼손됐다. 사실 여부를 떠나 국민은 분노했고 사회적 갈등은 커져만 갔다. 참지 못한 국민은 때로는 거리에서, 때로는 웹에서 울분을 터뜨렸다.
 
'외상 후 울분 장애(PTED)라는 개념을 확립한 정신의학자 독일 샤리테대학 미하엘 린덴 교수는 "울분은 일상에서 겪은 부정적인 감정이 정의나 공정하지 못한 특정 사건을 계기로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는 2010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한국사회에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출간 11개월 만에 100만 부를 넘기는 등 당시 기록적인 판매부수는 외신마저 주목할 정도였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책의 인기 요인과 관련해 "한국사회의 공정과 정의에 대한 욕구와 갈증"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사회에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킨 지 10년. 한국사회는 '상실의 시대'로 퇴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공정은 한국사회가 앓는 만성적인 고질병이라며 '중환자 상태'라고 진단했다.
 
신광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공정은 올해의 문제가 아닌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라며 "올해는 그동안 고착됐던 불공정 문제가 조국 교수 법무부 장관 임명 관련 등이 정치 쟁점화되면서 부각된 측면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법이나 제도가 제대로 만들어지고 또 엄격한 집행 요구가 되는 시작단계부터 단추가 안 끼워지는데 제도만 바꾼다고 공정성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회 구조적·제도적 측면과 연결돼 있어 오랜 기간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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