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고착돼온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가 바뀌고 있다. 최근 국제 무대에서 미국이 발을 빼면서 스스로 '글로벌 리더십' 약화를 자초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기보다는 미국의 이익만을 쫓는 '신(新)고립주의(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은 자국의 이익만을 쫓는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있다.(사진제공=연합뉴스)

美, 글로벌 리더십 약화 자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후, 고립주의 외교 노선을 굳히면서 국제 문제에서 미국이 손을 떼고 있다. 그 단적인 예가 미국의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대선 후보 시절부터 "파리협약은 사기"라고 몰아붙이며, 취임한 지 4개월여 만에 협약 탈퇴 방침을 공식화했다. 협약이 미국의 생산업체를 과도하게 규제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온실가스 배출 절감을 위한 국제사회의 약속을 깨고, 결국 자국의 이익을 선택한 셈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트럼프 정권 출범 직후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TP)에서 탈퇴했다. 또 지난해에는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파기 선언으로 논란이 일었다. 지난 10월에도 동맹국들과 상의하지 않고 시리아 철군 방침을 강행해 전 세계 비판 여론이 빗발쳤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의 과제는 세계치안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트럼프 정부의 이 같은 태도에 국제사회에서는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미국이 자국 이익을 우선시함에 따라 세계 각국도 이에 대응하기 분주한 모습이다. 특히 중국은 아세안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등 미국이 비운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지난 4일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아세안 (ASEAN·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 정상회의와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동아시아 패권을 놓고 격돌했지만 미국이 체면을 구긴 모양새다. 중국은 미국을 배제한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타결을 주도하며 영향력을 과시했다. 반면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을 내세워 맞불을 놓았지만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미국 국무부의 인도태평양 보고서 발표는 다분히 RCEP 타결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자체가 중국의 아태지역 패권 확대 저지에 목적을 두고 있는 만큼 인도태평양 전략에 전념한다는 미국의 의지를 재확인함으로써 중국을 포함한 아태 차원의 무역틀이 마련되는 데 대해 견제에 나선 셈이다.
 
더욱이 아세안 정상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정상회의에 불참한 데 항의하듯, 이번 미국과의 정상회의장에 대거 나오지 않았다. 정상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낸 국가는 10개국 중 주최국인 태국과 베트남, 라오스 세 곳에 불과했다. 미국으로서는 중국 견제와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명제 사이에 있다가 일격을 맞은 것이다. 
 
최근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따라 향후 미국 주도에서 벗어난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될 것이란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관측통들은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미국 소외(America alone)'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AFP 통신은 "미국의 동맹 체제가 이완될 경우, 동아시아패권을 쥐고자 중국이 세력권에 대한 우위를 강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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