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 지원 대상이 될 만큼 빈곤층은 아니지만, 채무를 감당하지 못하거나 실직 등으로 갑작스런 어려움에 처하면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생활고로 인해 목숨을 끊는 연이은 비극적 사건에 '사회안전망'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일 70대 노모와 40대 딸 3명 등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된 서울 성북구의 한 다세대 주택 출입문에 폴리스 라인이 설치돼 있다.(사진제공=연합뉴스)

장사 실패·빚, 생활고가 부른 비극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과 닮은 일이 또 발생했다. 지난 2일 숨진 채 발견된 '성북동 네 모녀'는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음에도 정부는 물론 지방자치 단체, 이웃 모두 이들의 죽음을 발견하지 못했다. 복지사각지대에 대한 무관심이 불러온 비극이라는 지적이다. 
 
정확한 사인은 부검결과가 나와봐야 알 수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경찰 수사와 별개로 이들 모녀가 그 동안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계속 나오는 중이다.
 
네 모녀의 경제상황은 최근 들어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첫째와 막내딸이 운영하던 쇼핑몰 사업이 어려워지고 지난 7월엔 둘째 딸마저 회사를 그만뒀다. 소득이라곤 노모가 매달 받아오던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38만 원이 전부였다.
 
지난 세 달간 건강보험료 86만 원 가량도 내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족이 살던 우편함에선 채무 변제를 독촉하는 신용정보회사 등의 우편물이 다수 발견됐다.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생계위기를 맞고 있었음에도 사회복지망에 포착되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이들 모녀는 지난 7월 주민센터를 찾아 금융·채무 문제를 상담받기도 했다.
 
사회안전망 재정비 목소리 잇따라

정부는 생활고로 인해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재발방지를 위해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복지사각지대를 없애려고 기울여온 정부의 노력에도 빈틈은 여전했던 것이다.
 
이번에 네 모녀가 숨진 성북구는 매년 65세, 70세가 된 노인들을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 방문대상자로 정해 상담을 실시 중이었다. 이는 가장 작은 단위 공동체인 동주민센터에서부터 위기가구를 파악하고자 서울시가 2015년부터 실시해온 복지정책이다. 그러나 사망한 노모 김 모씨는 지난 2016년부터 해당 집에 거주, 이사 온 당시 70세를 넘겨 찾동 대상자가 아니었다.
 
정부는 또 2017년 9월부터 사회복지 지원 대상자를 찾기 위해 금융·연체정보를 활용하고 있지만, 김 씨 모녀들은 이런 안전망에도 걸러지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2년간 연체 금액이 100만 원 이상 1,000만 원 이하인 사람들의 정보를 금융위원회로부터 제공받고 있다. 숨진 이들 모녀는 채무 금액이 100만 원 이하, 1,000만 원 이상에 해당해 통보 대상에서 누락된 것. 지난달까지 건강보험료 3개월 분을 체납했지만 정보수집범위 기준이 '6개월이 이상 체납'에서 '3개월 이상'으로 변경된 지 지난달 말 이전의 일이라 모니터링 대상에서도 빠졌다.    
 
이에 사회 각계에서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제때 지원이 제공될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국회 최고위원회에서 "탈북 모자 아사 사건, 송파 세 모녀 사건 등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안타깝다"면서 "기초 생활보장 대상자 중심의 공적 부조, 저소득층 전체에 대한 생활고 상담과 공공 일자리 지원 등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좀더 촘촘한 복지망을 구축하기 위해 대상기준 등을 완화하겠다"며 "서울형 기초보장과 긴급복지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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