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달 25일 세계무역기구(WTO) 내 개발도상국 지위를 사실상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논의의 핵심은 ‘향후 협상부터는 농업 분야의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브라질, 싱가포르, 대만, 아랍에미리트(UAE) 이후 5번째로 개도국 지위 포기 선언국이 됐다.

 

 ▲정부가 지난 달 25일 WTO 농업 분야 개도국 특혜 포기를 선언했다. 이에 국가 차원의 농업·농촌 종합대책을 마련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사진제공=연합뉴스)

 

향후 WTO 선진국으로 분류되면 기존 17.3%에 대한 관세감축 범위가 4%로 바뀌어 농산물 시장 대부분을 개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산 쌀·채소·과일 등 농산물은 수입산과의 경쟁에서 타격이 불가피하다. 농산물 가격 유지를 위해 지급하는 농업 보조금도 규제 때문에 감축될 수 있다.

 

정부가 ‘레드라인’(한계선)으로 지정해 지켜오던 농업 분야 개도국 하차하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미국의 압박이 있었다. 미국은 중국과 인도를 겨냥해 다수의 WTO 회원국에게 '개도국 지위 포기'를 강하게 요구해왔다.

 

미국은 지난 2월 이후 WTO 일반이사회에서 “경제적 위상이나 발전수준이 높은 국가들도 개도국 특혜를 누리고 있다”며 개선 필요성을 거듭 주장했다.

 

미국이 제시한 ‘개도국 혜택부적합 국가 조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세계은행에서 분류한 고소득 국가 △세계 상품무역에서의 비중이 0.5% 이상 등 4가지다. 한국은 이 기준에 전부 해당된다.

 

정부는 현시점에서 개도국 특혜에 관한 결정을 미룬다고 하더라도 향후 WTO 협상에서 우리에게 개도국 혜택을 인정해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홍남기 부총리는 "결정이 늦어질수록 대외적 명분과 협상력 모두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며 "개도국 지위 견지 여부를 두고 국익 차원에서 판단했다"고 말했다.

 

'WTO 개도국 지위'는 회원국이 스스로 판단해 선언하는 '자기결정 방식'으로 부여된다. 다른 회원국이 문제 삼지 않을 경우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95년 WTO 가입 시 개도국임을 주장했지만,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계기로 농업과 기후변화 분야 외에는 개도국 특혜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개도국 지위를 기반으로 한국은 그간 농업 분야에서 관세 및 보조금 감축률과 이행 기간 등에서 혜택을 누려왔다. 정부는 국내 농산물 시장을 고율 관세로 보호하고, 농업계에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정부가 ‘쌀 같은 민감 분야는 최대한 보호하게끔 유연성을 갖고 협상하겠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농민단체들은 “개도국 지위 포기는 통상주권과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며 반발했다.

 

정부는 “향후 세계무역기구에서 규제하는 보조금에 해당하지 않는 ‘공익형 직불제’ 조속 도입, 개도국 지위 포기 보상·지원 등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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