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조리 고발인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위험한 도발인가. 영화 '조커'를 둘러싼 의견이 분분하다. 국내외 평론가들은 영화에 대해 상반된 반응을 내놓지만, 적어도 일반 관객들은 영화의 의미를 해석하고 패러디하는 등 적극적으로 영화를 소비하고 있다. 조커는 올해 최고의 화제작이면서도 문제작인 것만은 확실하다.

'선악에 대한 사유'는 역사적으로 늘 대중들에게 관심과 논쟁의 대상이었다. 선악의 경계를 허무는 영화 속 이야기는 그래서 더 논쟁을 불러왔다는 평가다. 조커의 폭력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문제는 특히나 크리스천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영화 '조커'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몰이 중이다.(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조커 신드롬' 불평등 들춰내 큰 호응
 

토드 필립스 감독의 영화 '조커'는 시작부터 음울했다. 영화에 짙게 깔린 낮고도 날카로운 콘트라베이스의 선율은 보는 이들의 심리를 옥죄면서 출발한다. 그 위에 덧입혀진 한 광대의 서사는 말할 것도 없다. 단순한 악당이 아닌 세상에 철저히 짓밟혀 버린 이의 감정을 세밀하게 그려내 그의 몸짓과 표정 하나하나까지 숨죽여 보게 만든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조커' 그 자체에 동화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때문일까. 세계는 지금 '조커 앓이' 중이다. 조커의 흥행은 '조커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이미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고 작품성을 인정받은 만큼 관객들의 반응도 뜨겁다.
 
영화는 사실 진부한 주제를 담고 있다. 한 주체를 무시하는 기득권들을 향한 사회고발용 영화다. 악당인 '조커의 탄생기'를 그린 이 영화에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열광하고 있는 것일까.
 
한 영화평론가의 표현을 빌자면, 조커는 '지독하게 처연하면서도 가슴 저릿한 악당의 탄생기'이다. 그저 남을 웃기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꿈꾸던 한 남자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이 어떻게 '절대악'으로 변해가는 지를 농밀하게 그려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했던 그는 자신을 조롱한 금융사 직원 셋을 우발적으로 죽이면서 점차 괴물이 되어간다. 이 가운데 카메라는 빈부격차와 불평등으로 몰락한 가상도시 '고담'을 보여주며, 조커가 결국 세상이 만들어낸 '악인(惡人)'이라고 웅변한다.
 
관객들이 열광하는 것은 영화 속 불평등과 빈부격차에 대한 메시지다. 이 영화에서 조커를 추종하는 젊은이들은 광대 마스크를 쓰고 길거리로 쏟아져 폭동을 일으킨다. 그리고 사회 불평등에 반발해 특권층을 '처단'한다. 현실과 닮아있는 문제를 현실과는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데에 많은 관객들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극단적 양극화에 시달리다 정신병에 걸린 아서는 자본주의에 잠식당한 현대인의 심리를 드러낸다"며 "못 가진 자들의 분노를 영화가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 잠재된 분노를 일깨우고 대리만족을 통해 분노를 수치 하는 양가성을 띤다"고 설명했다.
 
 ▲영화 '조커'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기독교 '대안적 의견' 제시해야
 

문제는 영화 저변에 '사회 부조리에서 악이 태동한다'는 세계관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찬반이 갈린다.
 
영화 속 조커의 표현을 문제 삼는 입장에선 폭력적 행위를 더욱 확산시킬 우려가 있음을 지적한다. 악당을 탄생시킨 것은 전적으로 사회의 책임이며 문제 해결 방식으로 폭력이 사용되는 것이 언뜻 정당화되는 것처럼 비쳐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총기사고가 잦은 미국에선 영화 속 총기난사 등이 모방범죄를 낳을 우려까지 제기된다. 이미 2012년 미국에서 '다크 나이트 라이즈' 개봉 당시 조커 분장을 한 청년이 저지른 극장 총기난사로 12명의 시민이 숨진 바 있다. 미국의 한 유명 배우는 "영화 '조커'는 병을 않고 있는 이들에 대한 무책임한 선전일 수 있다"며 "조커를 (병을 앓고 있다고) 축하해주는 것인가. 폭력을 미화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결국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조커의 폭력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문제다. 특히 기독교인들에게는 선악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폭력의 정당성'을 운운하는 세상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과제를 안긴다.
 
조커와 같은 사람들을 방치하면 고담시와 같은 몰락한 사회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교회는 낮은 자들을 보듬고 선한 목소리를 내는 '대안적인 공동체'가 돼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성돈 교수(종교사회학)는 "영화에서는 악의 태동을 사회적 문제와 결부한다. 물론 사회가 아서같은 이들을 보듬고 정당하게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데 그렇지 못했다는 점에는 아쉬움이 남는다"며 "그렇다고 해서 폭력성을 행한 것을 정당화할 순 없다. 악이 악으로 진화되는 것과 관련해 누군가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면, 기독교인들이 목소릴 내야 한다"고 밝혔다.
 
영화 '조커'를 바라봄에 있어 크리스천들은 '대안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견해도 덧붙였다.
 
조 교수는 "영화를 보면 조커가 범죄를 일으키고 나서 사람들이 환호하고 받아들이지 않나. 이것은 세상적인 방법이자 가치"라며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똑같은 방법을 취해선 안 된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로마서의 말처럼 세상과 다른 대안적인 의견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세상 가운데 선한 목소리를 내고 도덕적인 기준을 제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는 것, 그것이 이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어떤 상황에서도 선한 내면을 지키는 것은 힘겨운 싸움이라는 걸 '조커의 아서 플렉'은 보여준다. '싸움에서 져 세상 속에 수많은 조커가 생겨나지 않도록, 낮은 자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영화 '조커'의 흥행은 기독교인들에게도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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