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상 한국교회건강연구원 원장 ⓒ데일리굿뉴스
사람은 솔직한 글과 말, 마음을 열고 진정성을 갖고 하는 말과 살아있는 글을 대하면 굳게 닫아 놓은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솔직함을 너그러움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도 밖으로 마음껏 나타내지 못한다.

그러면서 마음에도 없는 입술의 언어로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며 낸다. 이것을 예의바르다고 착각한다. 솔직한 말이 어떤 땐 자신의 생각이나 비위에 맞지 않기에 버릇없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런 벽을 넘어야 성도들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 수 있다.

교회공동체가 각자가 가진 비밀이나 부끄러운 일들을 가슴 속 깊이 묻어두기만 한다면 건강한 공동체로 나아갈 수 없다. 성도들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도록 해야 하는 것은 모든 일을 사랑의 눈으로 살펴 볼 줄 알게 하기 위함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힘없고, 불쌍하고, 보잘 것 없고, 작고,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것, 남에게 버림받은 것들을 사랑할 줄 알게 해야 한다. 더욱이 그들의 아픔을 사랑할 줄 아는 신앙인이 되도록 해야 한다. 마치 예수님처럼 말이다.

세상에는 진정 아름다운 것도 많지만, 겉으로만 아름답게 보이는 것도 많다. 겉으로는 남 보기에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한 번쯤은 따져 보도록 하는 것이 좋다. 그와 반대로 겉은 볼품없어도 속은 아름답고 쓸모 있는 것도 많으니 그 또한 살려보도록 할 일이다.

20여 년간 매주 칼럼을 쓰다 보니 간혹 이런 분들이 있다. 그냥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면 될 것이지 굳이 썩고 병든 것까지 들추고 파헤쳐 보여서 무얼 배우겠느냐고.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찍, 될 수 있는 대로 일찍 찾아내 가르쳐야 한다고 본다.

썩은 원인을 여러 면에서 찾아보게 하고 그 원인에 따라 스스로 치료하면서 바르게 살아가려는능력을 가진 곳이 ‘교회’요, ‘개혁주의신앙’이 아닐까.

가톨릭교회는 ‘교황’을 만들고 이단 사이비는 ‘교주’를 만들지만, 교황도 교주도 아닌 개혁교회는 건강한 ‘목회자’를 세운다. 그런 가운데 목회자 스스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으로 바르게 세워 가면 쓰임 받게 된다. 이렇게 자라고 커야 제대로 사람 구실과 직분자로 사명 감당할 수 있다.

솔직한 글을 쓴다는 것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는 꾀나 요령이나 거짓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바보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땀 흘리며 일 할 줄 알고, 어려움을 이겨 낼 줄 알며, 옳지 못한 일에 대해서 강하게 대항할 줄 알고, 그릇된 일은 비판해 올바른 길을 찾을 줄도 안다.

또한 보는 눈이 넓고, 생각이 깊고, 앞서 가서 멀리 내다볼 줄도 안다. 꾀나 요령으로, 거짓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로 눈앞의 이익에만 어두워 자기 밥그릇 지키기 위해 아웅다웅 다투며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남의 괴로움 따위는 모르거나 알아도 모르는 척 한다. 사실 남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척 하지만 정말 어렵게 더불어 살아야 할 일에는 발뺌한다.

한국교회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신앙이나 인생은 매일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하나의 과정 같다. 그래서 끝까지 가본 사람만 이 시작을 알 수 있다. 듣는 이들이나 글을 읽는 사람 중에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은 큰 위로가 될 것이고, 그와 같은 처지에 있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처지를 잘 이해하게 돼 결국 모두 한마음, 한 뜻, 한 방향이 될 수있을 것이다.

시사성 있는 주제를 다루는 논객이 생각할 것은 시대정신과 역사, 그리고 사람 등 일 것이다. 이런 깊이와 넓이, 그리고 안목을 가지고 슬기로운 신앙생활과 나라사랑, 사명감당의 말과 글로 사회와 소통하며 마음껏 풀어 놓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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