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가 1965년 한일협정 이래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제외 조치로 촉발된 양국 갈등은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며 국민들의 '반일 대 혐한' 대치로까지 이어지는 양상이다. 한일 관계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는 가운데,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는 표면적 연출일 뿐 숨겨진 의도는 따로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러한 속내는 역사 왜곡과 독도 도발 등 퇴행적 정치 행보를 이어가는 아베 정권에서 엿보인다. 그리고 그 중심엔 전전(戰前) 일본의 회귀를 위해 오랜 시간 일본 사회를 움직인 '일본회의'가 있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 가속화가 거침없다. 그 중심엔 전전(戰前) 일본의 회귀를 위해 오랜 시간 일본 사회를 움직인 '일본회의'가 있다. 사진은 아베 신조 총리가 자위대 사열식에 참석한 모습 (사진제공=연합뉴스)

일본 우익의 중심 '일본회의'
 
일본 사회의 우경화 가속화가 거침없다. 이제는 군국주의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 신호탄은 지난달 단행한 대규모 개각 및 자민당 당직 개편. 아베 신조 총리는 장관 19명 중 17명을 교체하면서 극우 성향의 측근과 우익 강경파로 대거 기용했다. 또 여당 자민당의 당내 개헌 조직에 중진들을 전면 배치해 개헌 추진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야욕을 숨기지 않았다.
 
더욱이 아베 내각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각료들이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이끄는 우익 단체 '일본회의' 회원이라는 공통분모다. 아베 내각에서 일본회의와 관련 있는 것으로 나타난 각료는 아베 총리를 포함해 총 15명, 전체 각료 중 75%에 달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자국 내에서조차 아베 내각을 두고 이른바 '일본회의 지부'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일본회의를 지원하는 국회의원 조직인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회원으로 알려진 각료는 아베 총리를 비롯해 아소 다로 재무장관 겸 부총리,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다카이치 사나에 총무상,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 에토 세이이치 영토담당상,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과학상, 가토 가쓰노부 후생노동상 등이다.
 
이중 특히 주목받는 인물은 지난 8월 "한국은 과거 매춘 관광국"이라는 막말을 한 에토 영토담당상. 그는 아베 총리의 최측근으로 2012년 아베 2기 내각 출범부터 총리 보좌관으로 재임했다. 그는 2013년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판한 미국에 공개적인 비난으로 맞대응했다. 또 과거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거짓이라는 망언을 잇달아 쏟아내며 개헌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하기우다 문무과학상은 일본 사회의 우경화에 앞장선 대표적 인물이다. 특히 역사 문제에서의 행보는 가히 독보적이다. 그는 일본 역사교과서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난징대학살 등 기술 방식을 문제 삼아 출판사 담당자들을 압박하고 교과서 개입의 실무를 담당했던 인물이다. 고노 담화를 폄하하고 무효화를 주장한 그는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를 주도한 설계자로 알려졌다.  
 
 ▲일본 '우익'의 현대사 / 야스다 고이치 지음 / 이재우 옮김 / 오월의봄 / 340쪽 / 1만 6,000원 (사진제공=오월의봄)

일본회의, 대중에 '극우의 공기' 주입
 
야스다 고이치의 <일본 '우익'의 현대사>에는 전전의 혈맹단에서부터 일본회의까지 일본 우익의 역사를 아우른다. 제2차 세계대전 패배는 동시에 일본 우익의 자멸이기도 했다. 우익 세력은 '전전의 유물'이라는 이유로 무대에서 끌어 내려졌다. 하지만 저자는 한때의 휴식일 뿐이었다고 밝힌다.
 
우익은 '반공'을 기치로 내걸고 되살아났고, 1970년대 이르러 '개헌'이라는 새로운 테제를 들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97년, 우익단체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와 개헌운동을 하던 우파 종교 지도자가 만든 조직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 통합하면서 '일본회의'가 탄생했다.
 
저자는 "개헌을 구심력으로 삼은 일부 우익은 풀뿌리 대중운동에서 활로를 찾았다"며 "그 흐름에서 일본회의와 같은 거대한 대중 조직이 탄생했다"고 설명한다. 일본회의는 대중운동을 강화했고, 그러면서 자신들의 목적을 하나씩 달성해나갔다.
 
일본회의는 정계와도 깊게 연결돼 있다.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소속 의원만 약 280명(2017년 10월 기준)에 달했고, 아베 내각 각료 중 75%가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본회의는 아베 정권과 일심동체로 움직이며 우경화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다분하다.
 
2017년 일본회의가 주최한 개헌집회에서 아베 총리가 영상 메시지를 보낸 것이 이를 방증한다. 아베 총리는 당시 영상에서 "2020년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새로운 헌법이 시행되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일본의 역대 총리 중 개헌 일정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베 총리가 처음이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2014년 보고서를 통해 당시 고노 담화 검증과 2기 내각 개편 등 아베 총리의 역사수정주의 행태를 강도 높게 비판했었다. CRS는 "새로운 내각에 일제의 해악행위를 부정하거나 깎아내리는 강력한 민족주의자들로 알려진 몇몇 개인들이 포함돼 있다"며 아베 정권의 역사수정주의 행태 요인으로 일본회의를 주목했었다.
 
저자는 일본회의가 개헌 외에도 국기국가법제정운동, 외국인 지방 참정권 반대운동, 교육기본법 개정운동 등에 몰두해왔다고 밝힌다. 그리고 이 운동 모두 그들의 계획대로 이뤄졌다. 일본회의는 집회, 데모, 지방의회에 대한 진정, 청원, 결의 등을 집요하게 진행했다. 저자는 이처럼 오랜 시간, 온 힘을 다한 정성이 일본회의의 장점이자 힘이라고 분석한다.
 
일본회의는 이런 과정을 밟으며 자신들이 바라는 일본상을 하나씩 이뤄가고 있다. 그리고 2019년 지금 이 시간에도 '우경화'로 불리는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일본회의는 항상 '흑자'를 관철해왔다는 것이다. 일본회의가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일본회의가 보여준 것은 '대중의 힘'이었다. (중략) 그들은 '지배'가 목적이 아니라, 공기를 바꾸는 데 힘을 쏟아왔다. 조그마한 부채로라도 몇천, 몇만 번 흔들어 바람을 일으킨다면, 큰 나무도 흔들린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그들은 계속 선동한다. 큰 나무는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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