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박사(물리학)·밝은빛명광교회 교육목사 ⓒ데일리굿뉴스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최근 어떤 분의 출사(出仕)와 관련해 나라 전체가 떠들썩한지 달포가 지났다.

그 여파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가히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필자는 그 분야에 식견이나 경험이 없어 뭐라고 견해를 말할 형편은 아니다. 그런데 TV를 시청하지 않아도, 신문을 읽지 않아도 그 이야기는 저절로 귀에 들려온다.

또한 이런저런 견해도 어느 새 ‘책이나 읽고 본연의 일에 마음을 쏟고 있는 내 공간’에 비
집고 들어온다.

그러면 이런 소리는 어떻게 전달될까? 소리를 내는 발음체가 진동하면 주위의 공기가 압축과 팽창을 되풀이하면서 발음체의 진동과 똑같은 진동을 하게 된다. 이처럼 공기의 일부에 주기적인 변위가 일어나면 공기의 밀도가 변한다.

이 공기 밀도의 변화가 공기 내에 복원력을 생성하고 이것이 또 공기를 진동시킨다. 이 진동이 우리의 귀에 도달하면서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발생하는 소리마다 다 우리 귀에 들린다면 도저히 시끄러워서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귀에 들릴 수 있는 소리의 진동수 범위를 16~2만 헤르츠로 한정해 주셨다. 이를 우리는 ‘가청진동수’라고 부른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우리 귀에 들리는 이 범위의 소리를 ‘음파’라고 한다. 보통 우리가 듣는 소리의 진동수는 5,000헤르츠 정도이다. 더 높은 진동수로 갈수록 불쾌감이 더해진다.

이 소리의 속도는 공기 중에서 섭씨온도 0℃일 때 331.5m/s이고, 1℃올라감에 따라 0.6m/s씩 빨라진다. 온도가 높을수록 소리의 속도가 빨라진다. 그렇다면 우리 사람들의 마음이 들뜰수록 사람들이 내는 소리도 빨리 전파된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더디 하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말하기를 더디 하려면 마음이 들뜨지 않아야 될 것이다. 어떤 일이나 사람과 사물에 관한 것을 말할 때는 차분하게, 그리고 과연 말할 필요가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보고 소리를 발하는 것이 옳겠다.

내가 이 말을 하지 않으면 천지간에 대격변이 일어나고 나는 그 책임을 혼자 짊어져야만 될 것 같으면 또 몰라도 말이다. 대개 화젯거리는 말하는 사람에 따라 그 중요성과 주관적 견해가 여러모로 다를 수 있고, 보는 시각에 따라 해석이 완전히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정의를 내세우면서도 정의롭지 못한 세상이 돼 간다. 성경 속에도 등장하는 인물들에 따라 말씀의 적용이 굴절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파면의 각 성분이 다른 속도로 진행할 때 음파는 그 진행방향이 휘게 된다. 이것을 ‘소리의 굴절’이라고 한다. 낮에는 지표면이 따뜻하므로 지표면 쪽이 빨라지고 그 음파의 위쪽 면은 느려지므로 음파는 상공 쪽으로 굴절한다. 그래서 소리는 멀리까지 전달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밤에는 지면 쪽이 주위보다 차가워져 소리는 지면 쪽으로 굴절한다. 그러므로 밤에는 소리가 멀리까지 잘 들린다.

인생의 밝고 좋은 소리는 멀리가지 못하고, 온갖 어두운 소리들은 천리를 그것도 광속으로 전파될 수 있다. 정의도, 신앙도 굴절이 일어나는 것이 세상이다. 우리의 기준은 오직성경 말씀이어야 한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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