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퇴사대행 등 역할대리를 넘어 감정까지 외주(Outsourcing)를 맡기는 시대다. 감정을 대리해 표현하는 '감정대리인' 현상은 감정 해소에 도움을 주는 하나의 창구가 되면서 현대인의 일상 곳곳에 자리하게 됐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관계 면역력을 약화시키고, 근본적인 감정조절 해결법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감정대리 현상의 원인은 무엇인지, 이러한 현상 속 교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사람들이 많이 쓰는 메신저 카카오톡의 대표 이모티콘(사진제공=카카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감정대리인 현상

'트렌드 코리아 2019'에 따르면 감정대리인은 사람들의 감정을 대신 표현해주는 사람, 상품, 서비스를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대표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감정대리인은 SNS 메신저 이모티콘이다.

카카오에 따르면 2012년 2012년 4억 건이었던 월간 이모티콘 발송량은 2013년 12억 건, 2018년에는 22억 건으로 급속도로 증가했다. 페이스북 메신저에서는 하루에만 50억 개의 이모티콘이 사용되고 있다.
 
평소 이모티콘을 즐겨 쓰는 직장인 이한송 씨(26)는 "짜증이나 분노 같이 대면해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이모티콘으로 대체하면 편하다"며 "이모티콘을 쓰면 더 정확하게 감정전달이 되는 것 같아서 자주 사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밖에 '감정대리인' 종류는 다양하다. 페이스북에는 '대신 ~해주는 페이지'가 있다. 대신 욕을 해주고, 직접 말하기에 찌질하게 보이는 푸념을 익명으로 털어놓는다.
 
'나 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 시점', '하트시그널' 등 액자형 예능 프로그램도 인기다.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연애나 여행 경험을 관찰하면서 감정을 표현하거나 마음의 허전함을 채운다.
 
'나의 슬기로운 감정생활', '죽고 싶지만 떢볶이는 먹고 싶어',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 등 일상의 감정을 다룬 에세이집도 호응을 얻고 있다.
 
교회, 함께하고픈 사람들 욕구에 반응해야
 
전문가들은 쉽게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직접적인 감정 표현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쌓인 감정을 대신 풀어주는 상품과 서비스, 문화 콘텐츠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트렌드 코리아 2019'는 사람들이 감정대리인을 찾는 이유로 △감정을 감당하기에 바쁘고 여력이 없어서 △감정 표현이 어려워서 △원치 않는 감정을 피하고 싶어서 등을 꼽았다.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성돈 교수는 "감정대리인 현상에는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현대인의 특성과 사람을 대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사이버 공간 속 감정대리인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했다. 사이버 공간은 대면이 없어 부담이 없고, 순간 위로를 받을 순 있겠지만 한시적이다. 변화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한 순간에 소외 되거나 모욕죄로 잡혀가는 등 그에 따른 위험도 크다.
 
조 교수는 "현대인에게 개인주의가 익숙하고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을 꺼려해도 내면 깊은 곳에는 공동체에 대한 갈망함이 있다"고 강조했다. 소셜다이닝(social dining), 쉐어하우스(share house) 등이 그 예인데 결국 외로우니까 모이게 된다는 분석이다.
 
그는 "교회가 사람들 내면에 있는 함께 하고 싶은 욕구에 반응하며 세상과는 다른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며 " 함께 밥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거나 3~4명 모여서 같이 삶을 나누고 기도해주는 모임, 얼굴 보고 대화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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