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박사(물리학)·밝은빛명광교회 교육목사 ⓒ데일리굿뉴스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창 1:4~5상).

빛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인정하신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어두움은 죽음과 상통하고 빛은 생명과 상통하기 때문이며 또한 어두움은 무질서와, 빛은 질서와 연결되기 때문”이라거나 “빛의 창조가 어두움이 그 본질인 혼돈 즉 카오스(Chaos)에 대한 반동적 사역임을 표현”이라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빛은 혼돈을 질서에로 수습하는 하나님의 상징이고, 어두움은 질서를 혼돈으로 되돌리려는 하나님의 적대자”로 보기도 한다. 또 “주야의 교체와 시간의 배분에서 우주는 빛과 어두움의 2대 세력의 싸움터”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생각은 빛과 어두움에 대한 영적인 의미와 물리적 현상을 혼돈하거나, 이방 신화의 영향이 성경에 끼쳐 있을 것이라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이 말씀은 단지 아직 광명들을 창조하시기도 전에, 식물들도 만드시기 전에 모든 생명의 존재조건인 최초의 빛을 창조하신 후, 하나님은 선하고 완전하신 자신의 뜻에 합당한 빛을 보시고 만족해 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빛의 창조를 두고 어두움은 무질서이고 빛은 질서이며, 어두움은 악이고 빛은 선이며 어두움은 실존적 절망상황이며 빛은 희망과 밝은 미래라는 주장도 있다. 만약 그 주장이 옳다면 빛이 창조되면서 어두움은 멸절되고, 이 세상의 모든 어두운 것이 밝은 빛의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빛이 창조된 후에도 여전히 무질서, 어두움, 악, 절망은 존재한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빛은 물리적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물리학적 견해에서 보면 어두움은 빛과 같은 실재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두움이란 단지 빛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 불과한 것이다.

빛의 창조가 어두움의 멸절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빛과 어두움이 나뉘게 됐을 뿐이다. 그래서 빛과 어두움은 동시에 공존하는 것이다.

우주에 관한 학설의 하나인 진동우주설은 팽창하고 있는 우주는 언젠가는 다시 수축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이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이 ‘우주의 알’에서 생겨나서 다시 ‘우주의 알’로 되돌아가는, 말하자면 팽창과 수축을 거듭 반복하고 있는 것이 된다.

어떤 과학자는 ‘팽창-수축’을 반복하는 우주와 창세기 1장 4절을 연결해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눈 것은 우주를 팽창의 시기와 수축의 시기의 구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설명은 지나친 해석이다. 창조된 빛이 비취자 둥근 지구의 빛이 비취는 쪽 반구(半球)는 광명한 세상으로, 반대쪽 반구(半球)는 어두운 세상으로 나눠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지구표면에 빛과 어두움, 밤과 낮이 동시에 나타났다. 오늘에 와서는 이 단순한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지만 모세 시대의 과학으로는 빛과 어두움, 밤과 낮이 동시에 지구표면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땅이 둥글다는 획기적인 생각을 하고 이른바 신대륙을 발견한 사건이 언제 일인가를 생각하면 창세기1장 4절은 놀라운 과학적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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