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구 선교사 ⓒ데일리굿뉴스
선교사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는 단어 중에 하나는 '기도편지'이다. 선교사로 훈련을 받으면서 후원교회, 후원자들과 파송단체에 기도편지를 쓰는 것이 '선교사의 의무'라고 교육을 받고 선교지로 가게 된다.

선교사는 기도편지를 쓸 때마다 몇 가지를 고민한다. '무슨 내용을 쓸까?, 길면 쓰면 안 읽을 텐데 짧게 쓸까?, 사진을 좀 많이 넣을까?, 디자인을 좀 예쁘게 해서 보낼까?'를 고민한다. 그 이유는 '선교사의 기도편지'를 사람들이 잘 안 보기 때문이다.

'선교사의 기도편지'를 받는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친분 관계가 있기에 기도편지를 받게 된다. 아무래도 어려운 선교현장의 이야기를 들으면 선교비 후원에 대한 부담감이 생긴다. 바쁜 일상 가운데 별로 동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낮선 선교지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기도편지를 읽을 마음의 여유가 별로 없다.

우리 선배 선교사들의 기도편지에 비하면 지금은 인터넷이나 SNS 통해서도 쉽게 기도편지를 보내지만,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선교지에서는 몇 장의 사진을 추가해서 보내려면 데이터 요금 제한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비공개국가에서 통신 자료 관련 제한지역에서 사역을 하는 선교사들은 그 내용도 상당히 조정하거나 신경을 써서 기록해야 한다. 선교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실수로 현지 정부에 노출되면 추방과 비자거부 위협문제에 부딪힌다. 그래서 그저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를 기도편지에 보낸다. 그런데 간혹 이런 사정도 모르고 선교사가 선교활동은커녕 현지에서 그냥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지내는 것처럼 오해를 할 수 있다.

그런데 더 힘든 것은 기도편지를 받는 이들로부터의 '무응답'이다. 인터넷에서도 악플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응답'이라는데, 선교지에서의 낮선 문화에 적응하며 쉽지 않게 사역을 하는 귀한 소식을 기도편지를 통해 전달했음에도 아무런 응답이 없다면 선교사는 참 외로움을 느낀다. 메일의 수신 확인을 열어볼 때 한참을 지나도 상대방으로부터 '읽지않음'으로 표시 될 때 오는 실망감이 크다. 그 옛날 함께 했던 시간이 무의미해지는 것 같고, 무엇보다도, '선교사라는 존재가 사람들에게 잊혀진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전혀 읽어 주지 않을 것 같은 분들이 기도편지를 읽어주고, 선교사를 기억해 줄 때 그 분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필자의 기도편지는 자세한 선교 사역 소식을 알리려다 보니 A4 12장에 이르는 긴 장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 주시는 분들이 계시다. 쓴 사람도 길어서 읽기 힘든 내용을 정성스럽게 읽어주시면서 기억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얼마나 큰 위로를 받는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선교본부로 돌아온 요즘에는 담당 지역에서 오는 선교사들의 기도편지와 지인 선교사들의 기도편지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기에 가급적 출력해 빨간펜으로 줄을 치면서 읽고, 중요한 부분을 인용해서 짧게라도 안부를 묻는 답신을 보낸다. 왜냐하면 필자 역시 선교지에서 보낸 기도편지를 읽고, 관심과 함께 짧게라도 답변을 해 준 이들로부터 큰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 귀한 선교사의 기도편지를 이제라도 좀 더 읽고, 짧게라도 답글이나 한마디의 위로가 전해진다면 어쩌면 그 답신을 읽고, 선교사역을 포기하려던 선교사에게 힘을 주는 사역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조금 투박하고 깔끔하지 못하고, 한두 명이 아닌 여러 명의 선교사의 기도편지를 받고 있어서 도무지 짬을 내기 어렵더라도 그들의 귀한 기도편지를 그냥 '읽지 않음'으로 묵혀 두지 않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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