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5월은 가정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는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대가족을 중심으로 가정의 질서와 중요성, 예의가 강조돼 왔다. 하지만 산업사회의 발전과 핵가족화 현상의 심화로 한국사회에서 가정해체의 속도는 빨라져가고 있다. OECD 국가들 중에서 ‘이혼율 1위’라는 불명예를 지닌 21세기 한국사회에서 가정의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 또한 해체위기의 가정에서 올바른 가정의 회복을 위한 노력들을 조명하면서 가정의 참된 의미를 되짚어본다.<편집자 주>

자녀를 잃어버린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까. 부모에게 거절당하는 것만큼 아픈 일은 있을까. 4명의 아이를 유산해 부모가 될 수 없었던 한 부부, 부모와 양부모에게 외면받아 자녀가 될 수 없었던 11명의 아이들. 그들이 만나 아픔은 나누고 믿음·소망·사랑을 더하며 가족이 되어간 이야기. 11남매의 엄마 윤정희 사모를 만나 그가 전하는 참 가족의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김상훈 목사·윤정희 사모와 부부가 가슴으로 낳아 사랑으로 기른 자녀들. 요한, 햇살, 하민, 하선, 사랑, 윤, 한결, 윤정희 사모, 행복, 김상훈 목사, 다니엘, 하나의 모습(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 첫째 하은이는 현재 캐나다에서 유학 중이다.ⓒ데일리굿뉴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하나님의 고통을 만나다

김상훈 목사(60, 강릉아산병원 원목)·윤정희 사모(56) 부부와 11남매가 사는 강릉중앙감리교회(이철 목사) 사택 소망관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여느 집보다 왁자지껄한 가족에게는 조금 특별한 사연이 있다. 대한민국 최다 입양 가족이라는 것.

김 목사 부부는 2000년 하은·하선 자매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1남매를 입양했다. 딸 하은(23)·하선(22)·하민(18)과 아들 요한(17)·사랑(16)·햇살(16)·다니엘(16)·한결(15)·윤(14)·하나(10)·행복(8). 아이들 모두 부부가 사랑으로 낳았다. 올해는 12번째 자녀를 품에 안을 예정이다. 
  
처음부터 입양을 계획한 건 아니었다. 윤 사모는 1992년 결혼 후 3년간 4번에 걸친 유산의 아픔을 겪었다. 유산이 반복될수록 고통은 배가 됐다. 그러나 아이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인생의 방향이 바뀌는 결정적 만남이 찾아왔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하나님의 고통을 만난 것이다.
 
"세 번째 유산으로 낙심해 울고 있었어요. 그때 '나는 전 세계에 버려지는 내 아이들 때문에 슬피 울고 있다'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렸어요. 온몸에 소름이 끼쳤어요. 주님의 아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버려지고 있는데 내가 울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죠."
 
그분의 고통은 부르심의 길이 됐다. 윤 사모는 아이를 낳기 위해 애쓰고 수고하기보단 주님이 허락하신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부부는 2000년 친자매 하은·하선이를 시작으로 11명의 아이를 품에 안았다. 모두 크고 작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었다.
 
이런 부부를 보며 주변에선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정작 윤 사모는 두려움이 없었다. 그는 "모든 자녀를 지극히 정상으로 낳아서 보냈으니 세상 잣대로 판단하지 말라는 주님의 응답을 믿었다"고 고백했다. 심지어 정상이라는 믿음으로 아이들의 장애 등록조차 하지 않은 윤 사모다.
 
아이들은 윤 사모의 믿음대로 변해갔다. 안짱다리였던 사랑이는 걷기 시작했고, 퇴행성 발달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진 요한이는 IQ64에서 IQ137의 영재가 됐다. 이제 누구도 아이들을 장애인이라 부르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다. 폐쇄성 모세기관지염으로 생사가 오가던 하선이는 완치되어 간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이후 부부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당시 사경을 헤매던 하선이를 위해 부부가 각자 따로 서원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윤 사모는 자신의 일부를 드리겠다던 기도대로 신장을 떼어 생면부지 이웃에게 기증했다. 그리고 억대 연봉 토목사업가였던 김 목사는 현재 주님의 종이 돼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

아픔 통해 만난 우리는 '붕어빵 가족'

이른바 '육아 전쟁'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부부도 여느 부모가 그렇듯 숱한 시행착오와 진통을 겪었다. 윤 사모는 "3년간 5명의 아들이 집에 왔다"며 "모두 같은 센터에서 자란 아이들인데, 나이도 같고 서로 알던 사이다 보니 처음에 호칭 정리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서로 어우러지지 못했고 몇 년이 흘러도 가족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집은 보육원의 연장 선상이었던 것이다.

부부는 호칭에 대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때마침 다니엘이 입양되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형, 동생" 부르는 다니엘을 중심으로 천천히 형제, 가족이 되어갔다. 윤 사모는 "다니엘은 입양을 원했던,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라며 "그렇다 보니 가족에 들어와서 흡수하는 게 벌써 달랐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니엘처럼 모든 아이가 엄마를 기다렸던 것은 아니다. 특히 부부가 다섯 번째로 입양한 요한이가 그랬다. 베트남 친부모에 이어 양부모에게 파양된 요한이는 온몸으로 부부를 거부했다. 심지어 유치원 재롱잔치 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나 엄마 안 좋아해요"라고 외쳐 윤 사모의 마음에 대못을 박기도 했다. 윤 사모는 당시 요한이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내공이 쌓였다고 생각했어요. 저희 착각이었죠. 두 번이나 거절당한 상처가 어떻게 쉽게 회복되겠어요. 아이들의 첫사랑은 부모잖아요. 베트남 친부모에게 한번 양부모에게 또 한번 거절당한 요한이의 첫사랑은 시설이었던 거예요. 그걸 떼어놓고 강제로 데려온 거예요. 첫사랑을 뺏은 존재였던 거죠. 나중에 요한이에게 울면서 사과했어요. 더 사랑하지 못하고 더 배려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때 요한이가 끌어안고 울더라고요. 처음이었어요."

부부와 아이들은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나누고 믿음·소망·사랑을 더하며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됐다. 윤 사모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아이들을 돕기 위해 같은 뜻을 품은 입양 가족과 함께 지난해 한국기독교입양선교회를 창립했다. 또 지난 4월엔 4번째 저서 <길 위의 학교>를 출간했다. 이번 신간도 다른 저서와 마찬가지로 인세 수입은 모두 기부한다.
 
우리 모두 주님의 입양아라는 윤 사모. 그는 하나님께 입양된 자로서 그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이 땅을 섬기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른손엔 11남매의 손을, 왼손엔 세상의 또 다른 연약한 아이들 손을 붙잡고 걸어가며 희망을 노래하는 전도사가 되고 싶다는 작은 바람을 내비쳤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한 가지 깨달았어요. 직접 낳던 가슴으로 낳던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이미 우리 아이들은 제 생명, 제 삶의 전부가 돼버렸거든요.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잖아요. 주님의 아이들을 사랑으로 바르게 잘 키워 세상에 내보는 것이 우리들의 역할이에요. 다른 건 다 필요 없어요. 오로지 사랑, 가족은 사랑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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