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케이팝(K-Pop)의 역사를 새로 썼다. 미국 빌보드와 영국 오피셜차트에 이어 일본 오리콘차트까지 석권하며 음악으로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대중들은 BTS의 인기비결로 뛰어난 군무 실력, 음악적 감수성, SNS를 통한 활발한 소통 등을 꼽는다. 물론 이같이 다른 가수보다 특출난 지점들이 존재할지라도 BTS가 지금의 정점을 찍은 데는 '강남 스타일'로 전세계를 흔들어 놓은 싸이 같은 걸출한 선배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BTS 역시 케이팝 기획사에서 나온 아이돌 그룹이고, 이들의 음악이 케이팝으로 불리는 한, 케이팝 열풍의 요인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케이팝'은 어떻게 부상했고 지금의 인기를 얻게 됐을까. 여기에 '케이팝'의 ABCD를 총 정리한 한 권의 책이 존재한다. 이 책은 세계적인 사회학자 존 리(John Lie) 교수가 케이팝의 역사와 산업을 분석한 번역본이다.

단순히 케이팝의 인기요인을 열거하기보다는 케이팝이란 현상과 함께 냉철한 분석을 곁들여 한국 사회를 들여다본다. '대한민국 대중음악과 문화 기억상실과 경제 혁신'이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저자는 케이팝이 '문화적 기억상실'과 '경제적 혁신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그간 국내 문화사회학이나 대중음악 연구자들 사이에서 찬반의견으로 인용되며 다소 논쟁을 빚기도 했다. 
 
 ▲미국 뉴욕 시티필드에서의 방탄소년단 공연모습.(사진제공=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자본론의 결과물, 이익쫓아 해외진출

"케이팝에 붙은 '케이(K)'는 한국 문화나 전통보다 오히려 '자본론(Das Kapital)'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케이팝 양식은 대한민국 수출 강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고 해야 정확하겠다. 그리고 이 발언으로 우리는 정치경제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급격한 경제발전과 현대화로 인해 전통문화를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조차’ 망각하고 있다. 한마디로 과거 한국인들이 서양이나 일본 문화를 어설프게 모방하던 단계를 지나, 서구의 발전된 문화를 자신의 문화인마냥 거리낌없이 재창조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레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는 케이팝의 시작점을 '서태지와 아이들'이라고 본다. 이른바 '서태지 혁명'으로 대중음악의 패러다임 전환이 가능했다고 강조한다.

이를 기점으로 새로운 서구 주류 음악의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전염성 강한 테크노 비트와 중독적인 후렴구, 감각적인 안무 등의 양식이 케이팝 원형으로 굳혀졌다는 것이다. 즉 케이팝은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의 현상이며 21세기 첫 10년간 명확해진 음악브랜드이자 양식이라 일컫는다. 이렇게 완성된 양식은 '문화기술'이란 이름으로 해외 진출을 시도하게 된다.

존 리 교수는 "케이팝 양식은 대한민국 수출 강박과 떼려야 뗄 수 없다"면서 "케이팝이 선택한 미학이나 음악발전을 부정하거나 과소평가하진 않지만, 해외 성공 소식으로 수출 지향성 케이팝이 대한민국 시장을 점령하게 됐다. 10대가 대중음악 소비 지배층으로 떠오르면서 업계 역시 아이돌 그룹 음악을 듣는 그 취향을 맞추고 생산하고 또 따라가는 형태를 취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가치판단을 배제한 듯해도, 저자는 케이팝을 바라봄에 있어 이처럼
 ▲존 리 지음·김혜진 옮김, 소명출판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현재 케이팝이 세계에서 인기를 끈다며 각종 매체가 떠들썩한데, 이를 생각하면서 읽으면 다소 이질감이 들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저자가 지적한 것과는 달리, 한국만의 색으로 대중문화를 창조하려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BTS가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이들 그룹은 케이팝의 특성을 취하면서도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낸 창의력과 공감력이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케이팝이라고 불리는 수출 대상인 상품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또 어떻게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까지 이 음악을 소비하게 됐는지, 그의 냉엄한 탐구를 쫓다 보면 한국 사회의 현실을 진단하게 만든다.

그는 "케이팝의 부상은 한국 수출의 성공이라는 또 다른 예에 불과할 뿐"이라고 일축하면서도 "한국 대중음악의 장르적, 예술적, 유흥적, 그리고 기술적 혁신은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이제는 한국 대중음악의 양적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인 도약이 요구되는 지금, 케이팝의 정체성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기엔 최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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