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언어, 고전언어 및 문헌학의 대가로 관련분야에서 이른바 ‘학자들의 학자’라고 불리는 일본 크리스천 노학자가 있다. 바로 타카미츠 무라오카 교수다. 그는 일본의 약탈로 인한 9개의 아시아 피해국을 40년 간 순회하며 자비량으로 속죄의 책임을 이행했다. 그리고 이 여정을 한 권의 책 <나의 비아 돌로로사>에 담았다.
 
 ▲18일 열린 <나의 비아 돌로로사> 북콘서트에서 저자 타카미츠 무라오카(오른쪽)와 통역 및 진행을 맡은 김정우 원장(한국신학정보연구원)의 모습이다.ⓒ데일리굿뉴스

'참회'와 '용서'위해 떠난 지식 나눔 여행기

“'비아 돌로로사'는 라틴어로 ‘슬픔의 길’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빌라도 총독으로부터 정죄를 받고 십자가를 진 채 갈보리 언덕을 오르신 그 길이 바로 ‘비아 돌로로사’다. 이 인류의 죄를 지고 걸어가신 예수님의 걸음은 곧 내가 걸어야 할 길이다.”
 
저자 타카미츠 무라오카 교수가 책 제목을 <나의 비아 돌로로사>라고 지은 이유다.
 
무라오카 교수는 성서 히브리어 문법 대작을 비롯해 히브리어에 관한 언어학적 연구, 시리아어-아람어 문법, 칠십인경 헬라어 등에 대한 방대한 연구물을 출판했다. 현재까지도 학술 분야 연구자들 사이에서 존경 받는 인물로 알려졌다.
 
1938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그는 1970년 이스라엘 히브리대에서 히브리어학 박사학위를 받고 영국 호주 네덜란드 등지의 대학에서 히브리어와 셈족 언어를 가르쳤다. 2003년 65세로 은퇴했다.
 
은퇴와 동시, 그는 아내와 함께 한국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홍콩 △필리핀 △중국 △대만 △미얀마 △태국 등 9개국을 무려 40년에 걸쳐 방문했다. 이 나라들은 모두 과거 제국주의 일본의 침탈로 인한 피해국이다.
 
그가 이 국가들을 방문한 이유는 참배와 사죄, 자비량 강의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을 동원해 속죄의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서였다.
 
서울 서초구 사랑의교회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그는 일본의 약탈행위를 절실히 자각하게 된 계기로 우연히 보게된 영화 <콰이강의 다리>를 소개했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군대가 6만 명 이상의 연합군과 20만 여명의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을 전쟁 포로로 이용해 버마와 태국의 정글 지대에 놓은 약 415km 철도 건설을 배경으로 한다.
 
그는 “당시 전쟁과 관련된 사업에 전쟁 포로를 이용하는 것은 국제법상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다”며 “그런데 1만 3,000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전쟁포로로 목숨을 잃었다. 일본 식민지 하에 있는 동남아시아인들 20만 명이 강제 노역을 당했고 그 중 1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일본 학교에서는 이런 전쟁의 참상과 죄악에 대해서는 배워본 적이 없었기에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과거 일본이 많은 국가에 피해와 상처를 안겼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정작 일본인으로서 조국의 어두운 역사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저자는 절감했다. 그는 일본정부를 대신해 그저 ‘죄송합니다’라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닌 실제적인 방식으로 양심의 가책과 고통을 피해자들에게 보이고 용서를 구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실천적 방법으로 그는 일제 침탈로 인한 피해국을 순회하고 각국에서 5주간 머무르며 성서 히브리어와 사해문서 히브리어 등 그의 전공과목을 가르치는 사역을 진행했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지식을 아시아의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무료로 전하고, 몇몇 일본인은 이전 세대가 아시아 국가에 행한 일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들도 나눴다.
 
 ▲<나의 비아 돌로로사>

이는 현장에서 일본의 죄를 대신 고백하며 왜곡된 역사를 폭로하고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통로가 됐다. 때문에 북콘서트를 진행한 김정우 교수는 이 책의 키워드를 ‘참회’와 ‘용서’라고 정리했다.
 
무라오카 교수 역시 <나의 비아 돌로로사>가 한국인들에게 참회와 용서를 구하는 책이 되길 바라며 일제 치하의 잔재로 정신적,물리적 고통을 겪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드리고 싶은 뜻을 전했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 통치의 고통을 그 누구보다 가장 오래 겪었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으로 슬픔에 젖은 사람들, 1945년 8월 해방 이후에도 만족스럽게 풀리지 않는 한일관계 속에 상처를 갖고 있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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