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년간 한국인 2명이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선택해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이들이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감행한 건 비영리단체를 통한 안락사와 이를 돕는 조력행위가 허용된 국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미 숨진 2명 외에도 해외 안락사를 준비하거나 대기 중인 한국인이 107명에 달한다는 점이다. 자기의 생을 마감하고자 해외로 나선 이들의 사례는 죽음을 논하는 데 소극적이었던 한국 사회에 큰 화두를 던지고 있다.     
 ▲최근 2년간 한국인 2명이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선택해 스스로 삶을 마감한 것으로 확인됐다.(사진제공=연합뉴스)

'안락사 허용국가'로 눈길 돌리는 사례 발생
  
'두 한국인은 왜 스위스까지 가서 삶을 마감해야 했나.' 한국인 2명이 2016년과 2018년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실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사실상 이들 모두는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는 국내를 피해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이다. 지난해 스위스에서 104세의 나이에 스스로 삶을 마감한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도 안락사를 불법으로 규정한 호주 법을 피해 스위스로 건너가 논란이 됐다.

대부분의 국가가 안락사를 인정하지 않지만 스위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까지 법적으로 인정하는 몇 안 되는 국가다. 말기암과 같은 신체적인 고통을 꼭 겪지 않더라도 개인의 결정에 따라 조력자살로 생을 마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자살을 돕는 행위도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안락사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경찰관이 입회한 상태에서 약물, 주사 등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다만 안락사를 선택할 때는 건강한 상태에서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는 증명이 있어야 한다.

스위스 연방정부가 조력자살을 허용한 데는 개인의 '자기 결정권' 존중을 최우선으로 봤기 때문이다. 여기에 높은 자살률도 한 몫 했다. 스위스 자살률은 OECD 37개국 가운데 14위지만,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세계 2위인 스위스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할 때 높은 축에 속한다는 통계다. 실제 투신 등 자살 사례가 늘면서 "자살을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인간답게 죽는 길을 열어 주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런 생각이 지금의 법과 제도를 낳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1980년대 들어 스위스에는 안락사 조력 민간단체들이 생겨났다. 당시 안락사 대상은 모두 자국민에 한해서였지만, 1998년 '디그니타스(DIGNITAS)'가 설립되면서 외국인까지 대상이 넓혀졌다. 이 단체 회원들에는 독일(3,338명)국적뿐 아니라 아시아권에서도 일본(25명), 중국(43명), 홍콩(36명), 싱가포르(18명), 대만(24명), 태국(20명) 등이 다수 가입돼 있다. 한국인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32명이 가입된 상태다. 이는 5년 전(3명)보다 10배 늘어난 수치에 해당한다.     

이 같은 단체들의 규모가 확산되면서 스위스 내에서도 우려가 없는 건 아니다. 안락사를 허용하는 범위를 두고 여전히 논란이 팽팽한 상태다. 초기엔 말기암 환자나 육체적인 문제가 있는 환자들에게만 조력자살이 허용됐지만 지금은 고령노인과 우울증 환자 등 안락사가 남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누군가는 치료비 부담 등으로 자살을 강요 받을 소지도 발생한다. 스위스의 한 법의학자는 "요즘은 조력자살의 대상이 확대되고 있어 정당성의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특히 해외에서의 한국인 안락사 첫 사례가 전해면서 한국에서도 해당 문제에 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이상원 대표는 "해외 사례대로 안락사가 합법화될 경우 생명경시 사상이 사회에 만연하게 될 것"이라며 "존엄사와 안락사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인간의 생명을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런 생각이 확산되지 않도록 생명의 소중함에 우선가치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 한국은 지난해 2월부터 존엄사법을 시행하고 있다. 국내에서 허용된 '존엄사'는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의료진의 판단을 받은 환자가 원할 경우 의료기관이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하는 형태다. 당시 존엄사법을 두고도 갑론을박이 거셌지만 현재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만큼, '죽음'에 관한 올바른 인식과 의견 수렴이 요구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생명과 관련한 지침 등을 강행하기보다 지금이라도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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