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민족 최대 명절인 설 연휴가 시작됐다. 흩어져 살던 가족이 모여 정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란 점에서 명절의 의미는 각별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팍팍한 현실 속에 가족·공동체·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가치가 빛을 발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번 연휴만큼은 서로가 서로에게 손 내밀며 위로가 되어주는 시간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사회현실을 보여주는 한편 어울려 사는 의미와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영화 3편을 소개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 2016)

선진국 사회복지의 함정 <나,다니엘 블레이크>
 
'영국'의 부조리한 복지제도를 통렬히 비판한 '나, 다니엘 블레이크'.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노동자 할아버지의 처절한 사투를 다룬 이 영화는 사회복지 제도 하나 때문에 시민이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 처절한 국가시스템 속에서 우리가 누구에게 손 내밀어야 할지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 주인공인 다니엘 블레이크는 부인을 잃고 홀로 목수일을 하던 중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돼 일을 계속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졸지에 실업자가 된 다니엘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관공서를 찾지만 '사지가 멀쩡하다'는 이유로 대상자에서 탈락하고 만다. 의사는 일을 하면 위험하다고 하는데 정부는 자꾸 노동이 가능하다고 우긴다. 일을 하면 죽을 수도 있는 상태로 실업수당이라도 받기 위해 구직활동에 나서야 하는 현실에는 주인공도 보는 이도 답답해진다.   
 
영화는 이처럼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우리 이웃들을 사회에서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무성의한 제도로 손쉽게 밀어낸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 '최소한의 권리'를 위해 힘겹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이 관료주의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말한다.
 
홀로 몸부림치며 시스템에 저항하는 다니엘의 모습은 그래서 더 씁쓸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 영화가 희망적인건 그런 다니엘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더 큰 목소리를 내며 이들을 보듬는 다는 것이다.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서로를 위로하는 마음들은 인간다움과 공감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남기며 깊은 울림을 준다.
 
  ▲극한직업(2019)
 
웃음 뒤 숨겨진 우리 내 현실 <극한직업>
 
영화 '스물'로 말맛의 정점을 보여준 이병헌 감독이 영화 '극한직업'으로 돌아왔다. 코미디 장르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감독인 만큼 이번 영화에서도 높은 웃음 타율을 보여준다.
 
'극한직업'은 해체 위기의 마약반 형사들이 범죄조직을 잡기 위해 치킨집을 위장 창업했다가 전국 맛집으로 소문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코믹수사극이다. 전형적인 형사물로써 잠복 수사를 하고 악당을 잡으려고 고군분투하는 형사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끝에 악당을 소탕한다는 이야기다.

서사적으론 익숙할지라도 예측불허의 상황과 촌철살인의 대사 속에 웃음 포인트가 가득하다. 그 웃음 안에는 현실을 파고드는 풍자가 있어 의미를 더한다. 보수적인 경찰조직부터 전쟁터 같은 조직생활, 자영업자의 애환 등을 그리며 우리 삶을 찬찬히 되짚어 보게 만든다.  
 
한국의 아픈 사회상을 뼈 있는 웃음으로 콕콕 짚으면서도 구구절절하거나 억지스럽지 않다는 점은 영화의 매력을 높이는 부분이다. 심지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전개, 빠른 속도감을 택해 엔딩까지 깔끔하다는 평이 많다.

설 연휴 국내외 대작들이 버티고 있지만 매력적인 작품은 관객들이 먼저 알아보는 법. 웃음과 메시지를 모두 챙기고 싶다면 흥행 맛집으로 소문난 ‘극한직업’이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2018 제71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 가버나움(2019)

난민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군상 <가버나움>
 
영화의 오프닝은 충격적이다. "부모를 고소하고 싶어요"라고 법정에서 당당히 말하는 어린 소년의 눈망울은 사뭇 진지하다. 이유는 '자신을 낳았기 때문'이란다.
 
영화는 주인공 자인이 왜 이런 결정에 이르게 됐는지를 거슬러 올라간다. 자인의 눈높이에 맞춰진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 깊은 곳에 아픔이 솟아오른다. 아이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데는 냉혹한 현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상영되는 2시간 동안 영화는 레바논 빈민가, 시리아에서 온 난민, 아동 매매 등 베이루트빈민가에서 벌어지는 빈곤의 현장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불법체류자 신세인데다 출생증명서도 없어 학교는 꿈도 꾸지 못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 수 밖 없는 게 아이들의 현실이다. 이런 척박한 현실 속에서 올망졸망한 아이들은 알아서 자란다.  자신들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비정한 어른들 사이에서도 아이들은 함께 부비고 놀 뿐이다. 이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매정한 현실의 단면을 자연스레 목격하게 된다.  
 
그렇다면 '가버나움'은 아픈 현실을 보여주는 것에만 그치는 영화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예수가 빈자들에게 기적을 행한 폐허를 뜻하는 제목처럼, 고통과 슬픔이 난무하는 현실에서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

기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지만, 분명 사랑과 정의 가치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존재한다. 슬프고 아픈 영화지만 이 속에서 반성과 회복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힘을 가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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