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의 노후자금을 책임지고 있는 국민연금공단이 지난해 10조 원가량의 손실을 보았다. 국민연금이 기금운용 부문에서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것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국민연금공단이 지난해 10조 원가량의 손실을 보았다. 국민연금이 기금운용 부문에서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것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이다. ⓒ데일리굿뉴스

 
하반기 증시부진·CIO 공석 영향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2019년도 제1차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서 지난해 기금운용 수익률 잠정치가 -1.5%라고 보고했다. 최종 수익률은 오는 2월 말 공시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국내외 증시가 지난해 하반기 급락장을 보인 데다가 기금운용을 지휘하는 운용본부장(CIO)의 공석이 길어진 탓에 투자역량이 떨어진 결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코스피는 마이너스 17.3%를 기록하면서 총 기금의 17.1%(약 109조 원)를 국내 증시에 투자한 국민연금이 직격탄을 맞았다. 손실 추정액은 약 9조 5,550억 원으로 2017년 전체 국민연금 수입의 22.8%에 해당한다. 국민연금 이사장을 지낸 전광우 이사장은 "국민연금 수익률이 1% 떨어지면 기금 고갈은 5년 정도 앞당겨진다"고 말했다.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해외 연기금과 비교하면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양호한 편"이라며 "국민연금이 장기 투자를 지향하므로 수익률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 달라"고 말했다. 또 박 장관은 "1997년 IMF나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당해 수익률은 부진했지만, 이듬해 반등한 전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계란 한 바구니에 담은 연기금
 
지난해 1월과 10월 사이 국민연금 국내 주식 부문 수익률은 마이너스 17.3%를 기록했다. 투자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20%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국내 증시에서 부진해지자 운용실적이 크게 나빠졌다. 전문가들은 "해외 부동산 등 대체 투자처 발굴 없이 국내 자산시장만 믿은 결과"라며 "예견된 투자 실패"라고 지적했다.
 
투자처 다변화에 대한 요구는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국민연금은 이를 외면했다. 지난해 4월 국민연금 최고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선 "해외 투자 등으로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지만 국민연금은 지금껏 국내자산 시장에서 고수익을 냈다는 이유로 신규 투자처를 발굴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기존 해외 투자처의 수익률도 좋지 못했다. 지난해 1∼10월 해외 주식의 연간 수익률은 1.64%였다. 하지만 이후 두 달 동안 글로벌 주식시장이 부진해 수익률이 악화되고 말았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해외 주식의 54.52%가 북미 지역에 몰려 있는데, 미국 증시가 11월∼12월 7.1% 하락한 것이 큰 타격이었다.
 
최근 국민연금은 국내 중시와 북미에 편중된 포트폴리오 분산을 위해 "대체 투자 비중을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시장은 '한 박자' 늦었다는 반응이다.

CIO임기 3년, "업무파악에만 6개월"
 
지난해 국내외 증시가 부진했다고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0.18%)보다 더 큰 손실을 기록한 것은 어수선한 기금운용본부의 상황도 한몫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금운용본부장(CIO)이 일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3년에 불과하다. 기본 2년에 1년 연임할 수 있다.
 
국민연금 출신의 한 금융전문가는 "처음 오면 업무 파악에만 6개월 가까이 걸리고 임기 후반에는 연임 신경 쓰느라 몇 개월 흘려보낸다"며 "제대로 일하는 기간이 너무 짧다"고 말했다.
 
기금운용본부는 기금운용위원회가 매년 마련하는 '자산배분안'에 따라 기금을 움직인다. 이 배분안은 정부가 5년 기준으로 짠다. 하지만 CIO 임기가 최대 3년에 불과해 장기적인 안목에서 자금을 운용하기 어려운 구조다.

반면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는 최고경영책임자(CEO)의 임기를 별도로 정해두지 않고 있다. 성과가 좋으면 책임자의 임기는 계속 보장된다. 조직 전반의 분위기가 안정적일 수밖에 없다. 장기적인 투자전략 마련이 어려운 구조인 국민연금이 참고해야 할 지점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2,200만 명에 이르는 가입자가 매달 내는 돈을 국내외 주식·채권·부동산 등에 투자하는 거대 조직이다. 운용자산 규모만 637조 원이나 된다. 일본 공적연금펀드, 노르웨이 국부펀드와 함께 세계 3대 연기금의 지위를 얻었다. 규모에 걸맞은 투자전략과 조직의 시스템 개선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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