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덕 ⓒ데일리굿뉴스
‘입주민 갑질 첫 산재 인정 모른 채… 병상서 눈감은 경비 노동자’라는 제목의 기사가 모 일간지에 단독취재라며 떴다.
 
기사 제목만 보면 경비 노동자의 애잔한 삶이 그대로 느껴진다. 생전 자신이 경비 일을 하던 아파트에서 입주민에게 갑질 폭행을 당한 충격으로 병을 얻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 인정까지 받았는데 의식 불명 상태로 투병해 오다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정말 눈물 나는 내용이지만 저간의 사정을 잘 아는 필자로서는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피해 유치원장을 만나 자세한 내막을 사건 초기부터 취재한 일이 있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군포시 수리산로의 열매 유치원은 주차장 부지가 아파트공유 지분에 속한다며 아파트 입주자회 측으로부터 집요한 주차위반 딱지 공격을 받아왔으며, 심지어 유치원 통학차량이나 학부모들이 잠깐 동안 아이들을 등·하교시키기 위해 유치원 입구에 차를 정차하는 것까지 제지당하는 등 수년 동안 시달려왔다.
 
경비원을 갑질 폭행했다고 하는 문제의 그날도 다리가 불편한 노구의 여자 유치원장이 주차장의 차를 빼고 자신의 차를 집어넣기 위해 시동을 켜고 잠시 세워둔 사이 또 주차위반 딱지를 붙여 놓은 것을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던 것이다.
 
경비원을 찾아 “도대체 누가 시킨 거냐. 왜 이렇게 심하게 주차단속을 하는 것이냐”하고 항의하며 주차위반 딱지 뭉치를 빼앗아 흔들며 (얼굴을 향해) 강하게 항의했다.
 
얼마나 심한 욕설이 있었겠는 지는 60이 넘도록 어린이를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해온 교육자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험한(?) 말로 상상에 맡길 뿐이다.
 
그리고 너무 억울하기에 경찰을 불러 “이런 심한 주차위반 단속이 어디 있느냐”고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경비원을 폭행했다면 폭행한 장본인이 현장에서 경찰을 부를 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후 이 유치원장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어 버리게 된다. 모 인터넷뉴스에서는 단독 취재라며 주차위반 단속에 항의해 유치원장이 경비원을 폭행하고 욕설을 퍼부었다는 식으로 악의적인 보도가 나갔다.
 
그러자 모든 지상파 방송을 비롯해 거의 전 언론에서 그 즈음 있었던 모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민에 맞아 숨진 사건과 관련해 몰아가기 식 마녀 사냥이 시작됐다.
 
유치원 원장에 대한 취재도 없이 일방적이고 악의에 찬 기사가 쏟아졌다. 모 방송사 기자로부터 “원장님이 때리지는 않으셨더군요. 그것은 확인했어요.”
 
기사가 나가고 난 뒤 기자에게 ‘왜 그런 식으로 몰아가느냐’고 항의하니 돌아온 답변이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것’이고 자신은 어느새 힘없는 경비 노동자를 주차 위반 딱지를 붙였다고 욕설을 퍼붓고 폭행을 서슴지 않은 개념 없는 할망구가 돼 있었다.
 
옛날 혜경궁 홍씨는 시아버지 영조에 의해 남편을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한 뒤 피 끓는 심정을 한중록으로 남길 수밖에 없었지만, 유치원장 자신은 언론중재위에 제소도 하고 경찰 검찰 법원에 제소하는 등 세상을 향해 억울하고 참담한 심정을 읍소했지만 ‘경비원 갑질 폭행’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숨진 경비원은 지난해 취재 당시에도 입원을 했기에 “유치원장의 폭행과 입원이 연관이 있는 것이냐?”고 묻자 “그렇지 않다. 평소에 지병으로 입원한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후 무슨 연유에서 인지 군포에 있는 사람이 서울 면목동의 모 병원 진단서를 첨부해 산재 신청까지 하고 또 경비원 자신은 병 요양차 시골에 있는데 누군가가 경비원 본인 도장까지 파서 찍어 진정서를 대신 제출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줄줄이 이어지게 됐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평소 정신과 질환을 앓던 故 정안수 경비원이 최근 숨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모 일간지에서는 ‘입주민 갑질 첫 산재 인정받은 것도 모른 채 병상에서 눈감다’라며 눈물샘을 자극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물론 이번에도 유치원장 자신에 대한 취재는 일도 없는 일방적인 기사였다. 유치원장은 지난해 무더운 어느 여름날 아파트 측의 표적 단속에 심하게 항의 한 번 했던 것이 이렇게 자신의 노년을 옥죄는 족쇄가 돼 버릴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한탄하며, 무책임한 일부 언론의 보도로 인한 가슴 아픈 피새는 도대체 어떻게 보상받아야 하는 것인지 막막하기만 할 뿐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한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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