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식 목사ⓒ데일리굿뉴스
구글 서버가 폭파된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 다른 것은 몰라도 온라인으로 예배하는 삶은 어떻게 될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코로나가 갑자기 왔듯이, 구글 서버가 다양한 이유로 파괴될 수도 있지 않을까? 특별히 온라인으로 예배하는 일에 안주하면서 온라인 예배가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하는 도피성도들은 어떻게 될까? 끔찍한 상상을 해 본다.
 
우리 시대는 코로나19로 교회 지형이 바뀌고 있다. 온라인 시청을 통해 예배에 참석한다. 그리고 당연하듯 예배드린다. 모여 예배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다. 이제 예배도 한번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생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온라인 참여의 모습은 TV 시청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참으로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주일에 바닷가로 놀러 가서 수영복 차림으로 온라인으로 참여하면서 예배드렸다고 자연스럽게 말한다. 예전에 불렸던 ‘가나안 교인’이라는 말이 무색해지고 있다. 교회로부터 도피하는 교인들의 모습이 이제는 더욱 담대해졌다. 합법적인 도피 교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것은 비상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주어진 일이다. 그래서 항상 정상을 기억하고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비상은 정상을 위한 발판이지 안주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은 죄성이 가득해 편리함에 금방 익숙해지고 노예가 된다.
 
주일에 일어나 자신을 정돈하고, 아이들을 준비하고 교회에 오는 일들이 불편한 일이다. 또한 차로 이동해야 하는 성도는 더욱 불편하다. 그런데 집에서 시청한다면 그만큼 편한 일이 없다. 이 모습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지 못함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이스라엘은 70년이라는 시간을 바벨론의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야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안주하지 않았다.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을 듣고 항상 돌아갈 준비를 했다. 이들이 고토로 돌아가고자 매일 준비했던 열매가 바로 회당이다. 회당은 성전 제사가 무너진 후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식민지가 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간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하지 않고 모이기에 힘썼다. 그것이 바로 회당이다. 회당은 다시금 예루살렘에서 예배할 날을 기다리면서 고난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었다. 회당의 모임은 일주일에 3번이나 됐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당에 여러 모양으로 모여서 율법을 듣고, 암송했다.
 
바벨론의 문화에 동화되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했다. 그렇지 않으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 것 같지 않았던 해방의 날이 왔다. 회당에서 준비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토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비상시기를 비상적 방법으로 준비하다가 마침내 정상으로 회복됐을 때 정상의 예배를 드렸다. 회당은 예루살렘을 위해 준비됐다.
 
코로나가 갑자기 왔다. 그래서 놀란 가슴이 됐다. 정부도 처음 겪는 일이라 매우 투박하게 일한다. 전파의 인과관계보다는 정치적인 처방이 우선됐다. 방역 앞에 모든 것은 후순위였다. 교회에 모이는 것이 어렵게 되고, 정부는 대면, 비대면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유포하면서 성도들의 정신세계를 흔들었다. 성경적 세계관으로 분별하기도 전에 전염의 위험성 앞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온라인으로 발 빠른 움직임이 일어났다. 온라인 교회의 등장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상 설교 구독자에 관심을 갖고, 언론은 온라인상 유명설교를 기사화한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모이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비상 상황일 뿐이다. 여기에 안주하려는 것은 안타깝게 보인다.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가볍게 만들고 있다. 문화의 도구는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상황에서 지혜롭게 사용해야 한다. 무제한적 이용은 자칫 큰 탈을 만들 수 있다.
 
한국교회를 볼 때 가장 슬픈 것 가운데 하나가 가벼워진 신앙이다. 가벼운 교회가 가벼운 설교를 전해 가벼운 신자를 만들어낸다. 가벼운 신자들은 항상 편리를 추구한다. 교회를 세우는 도구로 자신을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 충족만을 추구한다. 지금 코로나 상황의 온라인 모임은 이러한 마약을 주입하고 있다.
 
잠시 생각해보자. 구글 서버가 파괴되면 어떻게 될까? 9·11같은 끔찍한 일이 일어나면 안 되지만, 역사의 앞길을 어떻게 알까?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이상 온라인 예배가 드릴 수 없는 곳이 수두룩할 것이다.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메타버스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편리에 젖은 신자들이 불편의 자리로 자발적으로 나올까? 편리는 사단이 잘 사용하는 도구다. 편리의 시험에서 이겨내려면, 비상에서 정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늘 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한 비상 상황에 할 일은 믿음의 여정을 돌아보고, 다시 돌아올 예배의 자리를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인격적인 예배가 본질이다. 지금 비상으로 모일 뿐이다. 그러나 눈은 항상 교회를 향하고 있어야 한다. 오지 않은 미래를 완벽하게 알 수 없지만, 과거를 보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신동식 목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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