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원 ⓒ데일리굿뉴스
한국정치를 이해하려면 정말 많은 걸 알아야 한다. 이번에는 ‘역선택’이다.

사전적 뜻풀이를 보면 ‘자기에게 유리하게 하려고 상대편에게 불리한 것을 고르는 일, 공급자와 수요자가 갖고 있는 정보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경제 현상이다.

예를 들어 보험 계약을 할 때 보험금을 탈 가능성이 큰 사람이 자신에게 유리한 보험을 선택함으로써 보험 회사의 편에서는 불리한 조건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해당된다.’고 설명한다.
 
이번에는 중고차 시장을 들여다보자. 중고차의 판매자는 구매자에 비해 그 차에 대해 더 많은 차량 정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차가 결점이 많다면 이미 정해진 중고차 시장 가격이 만족스럽기 때문에 시장에 자신의 차를 내놓게 되지만 질 좋은 차를 가진 사람은 차의 성능에 비해 평균적으로 책정된 시장 가경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차를 시장에 내놓지 않으려한다. 결과적으로 시장에는 질이 안 좋은 차가 많아지는 만큼 구매자는 품질이 좋은 상품보다 역으로 품질이 낮은 상품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논리이다.
 
역선택 이론은 ‘어드버스 셀렉션’(adverse selection)으로 표기된다. 정보경제학의 창시자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 애컬로프가 1970 년에 쓴 논문 ‘레몬 마켓’ 이론에서 쓰인 용어다. 반대 용어는 ‘피치 마켓’. 피치(peach,복숭아)와 레몬에 대한 처우가 이렇게 다르다는걸 아는 분도 많지 않을 것 같다. 우리 표현으로는 개살구 시장, ‘빚 좋은 개살구’라는 우리 속담도 있지 않은가?
 
경제학 용어 역선택이 정치의 계절에 등장한 건 8월 30일 시작한 국민의힘 경선과 맞물려 있다. 국민의힘 경선에는 가족의 부동산 의혹으로 탈락한 윤희숙 의원을 제외한 12명이 출마를 선언했다. 후보들은 추석 전인 오는 15일 1차 예비경선을 치러 8명으로 줄어든다. 2차 경선은 10월 8일, 후보를 다시 4명으로 압축한다. 최종 후보는 11월 5일 결정된다.
 
앞서 국민의힘 경선준비위원회는 1차 경선은 여론조사 100%, 2차 컷 오프는 여론조사 70%, 당원투표 30%, 3차 경선은 여론조사 50%, 당원투표 50%를 합산해 최종 후보를 가려내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럼 이 시점에서 역 선택이 왜 문제가 되는 걸까? 대선 후보들 간의 지지도 변화가 셈법을 복잡하게 하고 있다.
 
최근 대선 후보군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야당 후보군 중 윤석열 후보가 여전히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당초의 압도적 기세는 주춤해졌고 홍준표 후보의 추격세가 급등하고 있는 점이 도드라진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TBS 의뢰를 받아 8월 27-28일 성인 1015명을 대상으로 한 적합도 조사(신뢰수준 95%, 표본오차 ± 3.1% 포인트)에서 윤석열 후보는 27.4 %, 홍준표 후보는 9.4%를 보였지만 범보수권 대선주자 적합도 조사에서는 윤 후보 25.9%, 홍 후보 21.7%를 기록하며 두 후보 간 지지도 격차가 크게 줄었다.
 
8월 21-22일에 실시한 JTBC-리얼미터 조사에서도 ‘보수 야권의 대선후보로 누가 가장 적합하냐’는 질문(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p)에 홍 후보는 21.5%로 윤 후보의 32.6%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 조사의 추이를 보면 두 후보의 격차가 6월, 7월, 8월을 거치면서 꾸준히 좁혀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결과를 두고 국민의힘 경선에서 홍 후보가 윤 후보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해석이 일각에서 나온다. 특히 여야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는 윤 후보가 홍 후보를 크게 앞서는데, 범보수권 조사에서 격차가 좁혀지는 건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없는 층에서 역선택의 여지를 보였다는 시각도 있다.
 
이 와중에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장에 선임된 정홍원 전 총리가 경선룰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논란이 불거졌다. 역선택 방지 조항에 반대하는 후보들이 공정성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승민 후보는 “역선택 방지 조항을 넣는 순간 공정 경선은 끝난다”며 “이미 확정된 경선룰을 토씨 한 자 손대지 말라”, “정홍원 위원장이 윤석열 후보만을 위한 경선룰을 만들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홍준표 후보 역시 경선룰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윤석열 후보는 선관위 결정을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처음 역선택 문제를 제기했던 최재형 후보 측은 “민주당 열성 지지자들이 국민의힘 경선에 끼어들려는 시도를 막아야한다”며 개정 요구를 굽히지 않고 있다.
 
하태경 후보는 대안으로 역선택 방지 조항을 빼는 대신 세 차례 경선 내내 당심과 민심을 50 %씩 동등하게 반영하자고 제안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지켜볼 일이지만 경선의 본질은 그게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어떤 정책을 제시하고 실행 모드를 담아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을까 고민하는 게 옳고 급한 일 아닐까? 어떤 후보가 레몬인지 피치(복숭아)인지를 제대로 분별할 수 있도록 말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이들이 물건에 대해 균등한 정보를 갖게 되어 품질이 좋은 상품들로 넘쳐 나는 시장, 피치 마켓을 유권자들은 원한다.
 
누가 투표할지 유·불리를 따지는 건 지엽말단의 문제가 아닐까?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이른 바 개방성을 택한다면 역선택은 불가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더불어 민주당 대선후보 1차 경선 직전 야당 지지층을 상대로 민주당 국민선거인단 가입을 독려하면서 자신은 추미애 후보를 밀겠다고 말한 바 있다. 추 후보가 되는 게 정권교체에 유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발언인 듯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가?
 

[송기원 언론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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