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원 ⓒ데일리굿뉴스
한 장의 사진이 충격적이다.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미군 군용기 내부에 빽빽하게 들어 찬 인파. 모두 640명이다. 콩나물시루와 다름없다.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는 이들의 모습이다. 잔뜩 겁먹은 채로 전방을 응시하고 있다. 어린 아이의 모습도 보인다.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아이의 눈망울은 그래서 더욱 슬프게 다가온다. 누군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외부에 공개한 사진이다.
 
최대 탑승 인원 134명 보다 5배가 더 탔다. 이륙 전, 반 쯤 열려있던 수송기 뒤쪽 문으로 사람들이 밀고 들어오자 기장이 내쫓지 않고 그냥 태운 것이란다. 그나마 사진 속의 사람들은 행복한 이들이다. 위험천만한 고국을 빠져 나갈 수 있으니까. 몇 시간 만 참으면 인근에 있는 안전한 이웃 나라, 카타르로 옮길 수 있다는 희망이 싹트고 있었으니까.
 
군용기 밖 계류장은 당시 아수라장이었다, 서로 먼저 타려고 아우성이다, 트랩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트랩까지 못 미친 사람들은 군용기 출발을 막으려는 듯 바퀴를 에워싸고 비행기에 오를 방도를 찾았다. 군용기가 속도를 더하자, 몇 명은 매달려 있다 떨어졌다. 군용기 바퀴에 치어 숨진 채 발견된 어린 소년들도 있었다. 카불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던 10대 형제들이라는 이야기도 들렸다.
 
카불 상황은 갈수록 악화됐다. 며칠이 지나도 국제공항 주변은 여전히 생지옥이었다. 생후 몇 개월도 되지 않은 어린 아기를 공항 경계 철조망 너머 서방 군인들에게 던지며 해외로 보내달라고 울부짖는 여성들도 있었다. 부모와 이별이 문제가 아니라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듯했다.
 
혼란이 거듭되는 와중에 이슬람 국가(IS)가 또 한 번의 충격적인 테러를 저질렀다. 탈레반을 미국과 내통한 세력이라고 비난하면서 무차별 공격했다. 아프간인과 미군 등 100 여 명이 사망하고 1,000여 명이 부상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며 보복을 다짐했다. 복수는 하루 만에, 드론을 이용한 ‘테러 기획자 사살’로 이어졌다. 탈레반과 미국이 애초 약속한 탈출 시한은 8월 말로 끝난다. 그럼에도 탈출 러시는 계속될 전망이다.
 
상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들이다. 75년 4월30일 월남 패망 당시, 사이공을 탈출하던 사람들이 저랬고, 50년 12월, 북한 흥남 항에서 미군 화물선을 타고 철수하던 우리 피란민들도 그랬다. 승선 정원의 230배인 1만 4,000여 명이 탔다던 흥남 철수 작전, 영화 속에서 봤던 그 장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애틋함이 더해진다.
 
매일 악화되는 아프간 소식을 접하다 분노에 빠진 건 비단 나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필자의 눈길은 지도자의 처신에 꽂혀 있다. 대통령이 그럴 수가 있을까? 비행기 트랩에 올라 몸을 돌려 환하게 웃으며 손을 높이 흔들던 대통령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국민들을 패닉에 빠뜨리고 한 발 앞서 도망쳤다.
 
아슈라프 가니. 올해 71살, 2014년 이후 대통령으로 봉직해 왔던 그는 국민들에게 국가 안보를 위해 국제회의에 참석한다고 말하고 달아났다. 탈레반의 무장 폭동에 대응하지 않고 대통령 궁을 넘겨주며 고국을 등진 것이다.
 
전임자인 모하마드 나지불라가 1996년 탈레반 정권 수립 초기에 사형당한 상황을 우려했던 것일까? 더욱 가증스러운 대통령의 면모는 도주 이후, 현지 외교가를 통해 전해졌다. 그가 탈레반에 항복하기 직전 차량 4대에 엄청난 액수의 현금을 싣고 도망쳤고 헬리콥터에 옮겨 실으려 했지만 들어가질 않자 활주로에 버리고 도망했다는 것.
 
그의 딸은 아버지의 재력으로 미국의 고급 주택가에서 호의호식하며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는 미국 언론의 후속 보도가 분노한 여론의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그가 달아난 곳은 며칠째 오리무중이었다.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하고 여론이 들끓자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아프간 대통령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발표했다.
 
행선지가 공개되자 도망간 대통령은 “돈을 갖고 떠났다는 건 사실무근이며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서 한 일”이라며 발뺌했다.
 
아슈라프 가니, 그는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두 번을 대통령으로 뽑아 준 인물이다. 카불대학교 총장까지 역임한 인텔리이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 박사를 딴 미국통이며, 세계은행 총재직에 도전하기도 했다. 반기문 총장과 함께 유엔 사무총장직에 도전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대통령은 사라지고 이슬람 근본주의자 탈레반이 대통령 궁을 차지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지금 두려움이 들끓고 있다. 탈레반은 대외적인 약속과 달리 정권 강화 차원에서 이념적 무장을 강화할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 몇 가지 증표들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여성들은 공직에서 쫓겨났고 원피스를 입은 여성은 처형당했으며, 여성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부르카의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신체형을 가하는 그들의 과거 행적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테러를 저지른 IS는 미군이 철수하면 탈레반과 본격적인 전쟁을 벌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다시 내전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가니 대통령은 아랍 에미레이트에서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동생은 탈레반 정권에 협조하겠다며 그들을 끌어 앉는 모습이 뉴스를 통해 공개됐다. 아프간 대통령의 탈주극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나비의 날개 짓’은 아니었을까?
 
국제사회의 아프간 딜레마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자국민의 구조를 포기했다는 야당의 비난에 직면해 있고 탄핵 추진이야기도 들린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같은 일은 한국과 대만 등 미국의 주요 동맹국에선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을 안보상 중요 지역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아프간 사태를 계기로 미국 외교의 신뢰 문제가 제기되자 대통령이 나서 이례적으로 직선적인 외교적 발언까지 했다.
 
그야말로 안팎으로 후폭풍이 일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손익 계산을 하며 피란민 보호 보다는 탈레반 정권을 두둔하고 나섰다.
 
우리 정부는 아프간에서 한국 정부를 위해 일하다 위험에 빠진 아프간 인들을 특별 기여자로 판단해 국내에 수용하기로 하고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그들을 무사히 귀환시켰다. 아프간 사태가 남의 일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졌다.
 
대통령 선거를 7개월 앞둔 지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대통령은 뭘 하는 사람인가? 나아가 국가는 무엇이며 정의는 무엇인가? 
 

[송기원 언론인 선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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