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식 목사ⓒ데일리굿뉴스
가치는 ‘인간이 대상과의 관계에 의해 지니게 되는 중요성’ 혹은 ‘사물이 지니고 있는 값이나 쓸모’를 의미합니다. 그 나라의 문화는 사회의 가치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불고 있는 부동산 투기와 주식 투기는 우리나라의 가치체계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6·25 전쟁 이후에 1960년대의 어려운 시기와 1970년대의 산업화를 거치면서 가진 가치체계는 교육을 통한 성공과 부의 창출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모 세대는 배고파도 자녀 세대는 배불러야 한다는 일념으로 교육시켰습니다. 입시제도의 변화는 그러한 가치체계를 잘 보여줍니다. 저녁 뉴스의 주 메뉴가 사교육과 비용이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떠오른 학군입니다. 여기에 부동산 투기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었습니다. 성공과 부의 창출은 돈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치를 만들어 냈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돈에 있다는 생각이 사회를 지배했습니다.
 
1980년대 출신들은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지분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의 쓰레기인 부와 성공을 배설했습니다. 민주화의 목적이 사회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부와 성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21세기는 쾌락과 허영이 안정화됩니다. 21세기의 가치는 부와 성공 그리고 쾌락과 허용을 빼앗기지 않고 지키고 세습해 누리는 것이 됐습니다. 그 일을 위한 부동산이 도구가 됐습니다. 이미 조짐이 있었지만 광풍이 분 것은 부와 성공, 쾌락과 허영의 세습을 견고하게 하는 길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누린 자들이 계속해 누릴 수 있는 욕망을 부동산이 한몫했습니다. 정부의 정책은 투기를 잡는 것에 역부족이었고 오히려 기득권자들의 부동산 욕망을 서민들에게 전파하게 됐습니다. 그러니 10억 주면 감옥에 1년 동안 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51%의 대학생들이 찬성하는 사태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이 내부정보를 접할 수 있는 요직에 들어갔을 때 얼마나 흥분되겠습니까? 고양이 앞에 생선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제 그 욕망이 부동산에서 각종 주식과 코인 투기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가치투자가 아니라 욕망 투기가 또 하나의 광풍으로 불고 있습니다. 이제 공부를 굳이 해야 할 이유가 상실됩니다. 젊은 세대가 결혼하지 않고,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부와 성공과 쾌락과 허영이 사회적 가치로 가득 차 있는 현실에서 선뜻 누가 결혼과 출산을 하겠습니까? 결국 비혼 출산이라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현대판 씨받이가 생겨나고, 씨받이 공장이 출현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시대는 세상과 교회가 같은 배를 타고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인정할 때 외모가 가장 큰 역할을 합니다. 집안을 볼 때 부의 세습을 보지 가문의 정신을 보지 않습니다. ‘어떻게 살아왔는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느 대학을 나왔고, 부의 수준이 어느 정도 되느냐만 봅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외적인 것에서 찾습니다. 참으로 천박한 세상이 됐습니다. 아름다운 성품과 견고한 신앙은 중요한 기준이 아닙니다. 세상만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도 비슷합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받는 길을 걸어가는 동역자, 교회, 배우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말 하면 ‘너만 잘 났냐’, ‘좋은 신앙인 났네’, ‘그래 한번 잘해봐라’, ‘꼭 그렇게 예수 믿어야 하냐’고 비꼽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비신앙인이 아니라 신앙인이 그렇게 말합니다. 사도 바울의 말은 쇠귀에 경 읽기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6-29).
 
이 말은 좋은 말이지 내게 필요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지는 정말 중요합니다. 가치가 부와 성공과 쾌락과 허영을 지키고 세습해 영원토록 누리는 것에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 가치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자부심과 하나님의 약속과 그 나라에 있다(마 6:33-34)면 비전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의 빈약한 가치를 허물고 견고하고 영원한 가치를 세우는 사람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택하셨습니다. 가치 있는 일은 개인의 경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핵심입니다. 그래서 소명은 비전을 이루고 비전은 역사를 만들고 역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신동식 목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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