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기 목사. ⓒ데일리굿뉴스
사람들은 삶이 위대한 사람, 삶이 고귀한 사람을 성인, 훌륭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삶이 훌륭하여 메시야가 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위대하여 메시야가 되셨다. 십자가는 가장 끔찍한 사형도구였다. 로마가 온 세계를 지배할 때에 로마에 반역하는 이들을 가장 잔인하게 죽이려고 고안하여 낸 것이 십자가형이다. 교수형이나 총살형은 한순간의 두려움과 고통으로 끝나지만, 십자가 형은 극한 고통을 느끼면서 죽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 형벌은 로마인에게는 시행하지 않았고 노예들과 폭동이나 반란을 선동한 자들에게 행하는 형벌이었다. 그 십자가에 예수님이 죽으셨다. 그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셨다. 그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 그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천국의 문을 여셨다. 이사야는 이렇게 선포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다. 십자가는 복음의 핵심이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해주셨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에 아덴에서 전도할 때 철학적 설교를 했다.(행17장) 아덴은 지금의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를 말한다. 그곳에서 바울은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들에게 모든 학문과 지식을 다 동원하여 설교했다. 그러나 반응이 없었다. 영 먹히지 않았다. 믿는 사람들도 적었다. 그곳에서 바울은 한 가지 처절한 교훈을 얻고 결심한다. '십자가 외에는 길이 없다. 오직 십자가만 자랑하겠다.' 그리고 아덴을 떠나 간 곳이 고린도였다. 고린도에서는 이렇게 선포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십자가의 도는 구원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지만,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십자가를 미련하게 본다. 십자가를 이야기하려면 죄를 건드려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편해 한다. 전도는 십자가를 전하는 것이다. '당신은 죄인입니다.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를 믿어야 용서받고 구원을 받습니다.'라고 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도의 미련함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전하면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아서 두려워한다. 그래서 좀더 특이한 방법으로 무언가를 끼워 넣으려고 한다. 그러나 단순하게 십자가의 도만 전하면 된다.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면 모든 것이 풀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십자가 안에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유혹을 이기고, 모든 환경을 이기고, 죽음을 이기고, 삶을 능력 있게 사는 비밀이 있다. 십자가 앞에서면 고난이 재해석된다. 차를 마실 때는 차도(茶道)가 있고, 바둑을 둘 때에는 기도(旗道)가 있고, 음식을 먹을 때에는 식도(食道)가 있는 것처럼 기독교에는 십자가의 도가 있다.
 
십자가 앞에 서면 정확한 자기진단과 자기성찰이 이루어진다. 십자가 앞에 서면 자신이 얼마나 비천한 존재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십자가 앞에 서면 누구도 사랑할 수 있다. 십자가 앞에 서면 누구도 용서할 수 있다. 십자가 앞에 서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 십자가 앞에 서면 어떤 형편에서도 충성할 수 있다. 십자가 앞에서면 욕심이 사라진다. 십자가 앞에서면 교만이 사라진다. 십자가 앞에서면 혈기가 사라진다. 십자가는 나를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십자가는 우리의 가치관, 세계관을 바꾸어 준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을 하나님 중심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나의 영광을 위해 살던 사람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한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교회는 십자가를 잃어버렸다. 십자가는 희생이다. 십자가는 사랑이다. 십자가는 용서이다. 십자가 든든히 붙잡고 날마다 이기며 나아가야 하는데 이권싸움에 교회가 분열되고 교단이 분열되었다. 목사의 윤리적인 문제, 교회 재정의 문제 모두 십자가를 잃어버렸기에 생긴 문제들이다. 성경은 역설적이다. 죽어야 산다고 한다. 버려야 얻는다고 한다. 비워야 채워진다고 한다. 낮아져야 높아진다고 한다. 섬겨야 큰 자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죽으려 하지 않고 살려고만 한다. 손해 보지 않고 이득을 챙기려고만 한다. 비우지 않고 채우려고만 한다. 섬기려 하지 않고 섬김을 받으려고만 한다. 그래서 신뢰는 땅바닥에 떨어지게 되었고, 손가락질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다시 십자가 앞에 서야 한다.
 
십자가 앞에 서야 바울처럼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을 수 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백하며 살 수 있다. 한국교회의 희망은 다시 십자가 앞에 서는 것이다. 영적 지도자들이 십자가 앞에 서야 한다. 성도들이 십자가 앞에 서야 한다. 십자가 앞에 섰을 때 주님의 은혜가 부어지고, 주님의 사랑이 부어질 것이다. 십자가 앞에 섰을 때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 새롭게 새롭게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사순절 기간에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며 다시 십자가 앞에 서자.

[이정기 목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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