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드러난 한국 교회의 위기 의식과 과제를 짚어보는 GOODTV 연중특별기획 ‘주여, 이 땅을 치유하소서’, 이번에 함께 들여다볼 문제는 다음세대를 길러내는 교회학교, 주일학교이다.

굳이 통계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체감할 수 있겠지만, 현재 교회학교 학생들의 수는 장년 성도에 비해 평균적으로 10~20퍼센트에 불과하다.

특별기획 13회에서는 박상진 교수(장신대), 김의신 목사 (광주 다일교회), 손성현 목사(창천감리교회), 반승환 목사(소울브릿지교회)가 패널로 참여해 ‘교회 의 미래, 교회학교의 현주소’를 주제로 교회교육이 처한 상황을 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다. 사회는 나상오 교수(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가 맡았다.
 
 ▲왼쪽부터 창천감리교회 손성현 목사, 장신대 박상진 교수, 백석대 나상오 교수(사회자), 광주 다일교회 김의신 목사, 소울브릿지교회 반승환 목사. ⓒ데일리굿뉴스

사회자 나상오 교수: 교회학교가 위기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듣고 있다. 먼저 교회학교가 과연 위기인지, 진단부터 시작한다.

박상진(박): 확실한 위기다. 제가 볼 때는 목사님이나 성도들의 체감온도는 조금씩 다른 것 같지만 위기라는 데는 다 공감을 하는 것 같다. 양적인 위기뿐만이 아니라 질적인 위기가 있는데 문제
는 복합적으로 두 가지가 한꺼번에 위기로 몰아닥쳤다는 점이다. 양적인 위기보다도 질적인 위기, 신앙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하나님나라 일꾼이 양성되고 있는가 라는 점에서 너무 무기력한 상태다. 교회의 질적인 위기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손성현(손): 저는 위기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위기라는 말을 사용하면 두려움을 야기시키고 젊은 교사들에게 동기부여가 안 된다. 누가 위기 상황인 곳에 투입되고 싶겠나? 위기라는 말을 쓰기 보다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바라보고 문제가 해결됐을 때의 기쁨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더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회: 위기 이야기로 시작하면서 의견이 다양하고 보는 시각이 상당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학령인구가 줄기 때문에 비례해서 교회학교 학생들도 줄고 있는 건 아닌가.

박: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학령인구 감소가 교회학교 감소를 충분히 설명해 주지 못한다. 제가 여러 가지를 분석해 보니 교회학교 내부적인 요인만이 아니라 가정, 부모, 목회, 한국교회 신뢰도 문제 등 여러 가지가 작용을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원인 분석이 필요하다.

한국교회가 위기이냐 교회학교가 위기이냐라고 했을 때 저는 한국교회가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가정이 위기고 부모가 위기이기 때문에 교회학교 아이들에게도 위기가 왔다고 본다.

사회: 그렇다면 학생들이 왜 교회를 가려고 하지 않나?

반승환(반): 재미없어서다. 5일 동안 공부하고 토요일, 주일에 다른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하는 시간과 교회학교가 아이들의 리듬에 맞춰진 게 아니라 어른들의 필요에 따라 교회 외적인 환경이나 공간의 제약 때문에 아침에 예배를 드리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필요를 어떻게 채워줄 것인가, 복음은 당연한거고 답은 가정밖에 없다. 한국교회가 정확하게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복음이 주는 삶에서의 유익들, 또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들에 대해서 우리가 너무 편향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 반대로 오고 싶어하는 교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김의신(김): 재미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한 이야기 중에 하나지만, 아이들이 교회에 오기 싫은 이유 중에 하나는 자신들이 싫어하는 단어들이 많기 때문이란다. 학교 싫어하는데 교회학교라 하고, 선생님 싫어하는데 교사가 있다.

어쩌면 단어 워딩 자체도 아이들에게 호감갈 수 있는 단어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패러다임을
바꿔서 교육적인 마인드보다는 선교적인 마인드로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익숙한 문화는 무엇이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그 자리에 복음을 어떻게 제시하고, 신앙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줄 것인지.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사회: 학교와 학원에서 배우는 것이 넘쳐나는 시대다. 교회학교에서 무엇을 더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문제 어쩌면 교회학교가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손: 재미라는 단어를 가지고 시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재미를 그냥 fun, 마냥 깔깔거리며 웃는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때로는 진지한 이야기만 하는데도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다. 먼저 이야기 중심의 교육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어떻게 몸으로 함께 움직이면서 배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다. 마지막으로 평화다. 비폭력적으로 소통하고 접촉하는 것들 배워갈 수 있다면 아이들이 이런 재미도 있구나 하고 느끼며 많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반: ‘복음만으로 될 것인가?’라는 고민 때문에 거리로 나와서 재미 등의 다른 요소 빼고 말씀을 전해봤다. 말씀만으로 힘이 있고 운동력이 있다. 아이들은 그 말씀을 들으면 돌아올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렇게 창조됐다. 세상의 문화와 견줄 수 있는 기독교의 콘텐츠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말하는 것이다.

사회: 다음세대 섬기는 교회학교 교사들, 사명감으로 시작했다가 금방 소진되는 구조다. 교회학교 교사문제, 현실은 어떤가?

손: 청년들이 교사를 안 하는 이유가 크게 두 가지 있다. 첫 째는 청년들이 너무 바쁘다. 충분한 여유가 없다. 한국사회가 한국청년들을 지나치게 혹사시키고 있다. 어떻게 하면 교사에 동원되는
청년들이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또 하나는 청년들이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함께 바라보며 걸어가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으로 부담감을 낮춰야 청년 교사들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사회: 자녀교육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우리나라가 아닌가. 어떻게 하면 이 부모들을 교회학교 교육에 참여시킬 수 있을지 좋은 방법이 없을까.

박: 학교 앞 전도도 중요하지만 믿는 가정의 자녀들이 신앙의 대를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 목회구조 자체가 교구편성 자체가 부모발달 중심으로 편성돼야 된다고 본다. 교육목사, 교육전도사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 아니라 담임목사가 다음세대 본부장이 돼서 교구 자체를 부모중심으로 편성해 교구가 완전 부모 교육이 되도록.

김: 강단에서 “여러분의 가정이 믿음의 가정이 돼야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계승되어져야 합니다”라고 해서 절대 그렇게 되는 것 아니다. 왜냐하면 부모의 관심은 어느 대학을 가냐, 어느 직업을 갖냐, 세상의 성공에 더 많은 관심이 가 있기 때문에 부모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알아서 나중에 때가 되면 오겠지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막연한 생각은 어쩌면 가정의 신앙교육과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굉장히 힘들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교회에는 부모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자녀들도 많다. 이런 자녀들은 어떻게 케어를 해야 하나.

반: 아무리 사이가 좋고 아이가 학업이 뛰어나서 관계가 좋다고 하더라도 분명히 부모와 아이 간 단절이 있다. 예수를 믿는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영역이 딱 거기다. 단절과 결핍을 채워주고 메워주는 역할. 여기에는 저희가 조심해야 될 부분이 있다.

현장사역자들은 대체적으로 부모보다 나이가 어리다. 부모와 아이와의 단절, 부모와의 대화 가운
데 어려운 부분들이 굉장히 많다.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다보면 결국에는 부모와 학교선생님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풀어가다 한 가족이 결국에는 주님께 돌아오는 마지막 선교의 장이 이 자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 교회는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 놀 수 있는 놀이마당, 놀이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회가 놀이터가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도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머리에 남는
것보다 경험이 남지 않나.

손: 아주 훌륭한 사람들이 교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인생의 바닥을 경험해 본 사람이 변화돼서 교사가 된다면 방황하고 흔들리고 온갖 범죄에 노출된 아이들의 마음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우리 청년들의 마음 속에 물론 교회학교를 잘 섬기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이 세상에서 정말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에게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따뜻함을 전하고 싶은 그런 뜨거움이 있다.

박: 사실 기독교 교육의 원형은 성육신이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인간의 눈높이를 맞추시고 인간 속에 들어오셔서 인간을 변화시킨 사건이지 않나. 부모는 자녀들 속에 들어가고 교사는 학생들 속으로 들어가고 목회자는 성도들 속으로 들어가고 교회는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정말 온라인 상황 속에서도 사랑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들 속에 들어가는 사랑이야말로 인격을 변화시키고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다.
정리: 정치경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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