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구 선교사 ⓒ데일리굿뉴스
코로나에 관계된 뉴스와 더불어 최근 한국의 뉴스에는 ‘집’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이번 정부에서도 많은 주택 정책들이 발표됐고, 이를 위한 장관과 실무자들의 한마디에 많은 부분이 연일 뉴스에 기사화 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기사에 대해서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선교사들은 크게 관심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물론 은퇴를 앞두거나, 한국에서 공부나 직장으로 인해 머무르게 되는 선교사 자녀를 위해, 안식관을 구하기 위해 주택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있었다. 간혹 은퇴 후 주택 문제 해결을 위해서 부담이 되지 않는 정도의 청약 저축을 들어 놓았다는 이야기 정도였다.

그런데 사실 선교사에게 있어서 ‘집’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선교지에서는 외부의 낮선 환경에서 안전을 보호 하는 기능을 한다. 또한 선교센터나, 교회, 선교사역의 소그룹 장소가 된다. 한국선교 초기 선교사의 집과 생활에 관심이 많았던 조선 사람들에게는 선교사의 집은 늘 구경거리였다. 특히 초기 선교사들의 기록을 보면 선교사 가정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동네의 유명한 구경거리가 됐다고 한다.

우리 가정도 선교지에서 늘 사람들의 구경거리였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가구와 살림에 관심을 가졌고, 선교지에서 보기 힘든 한국 물품들에 대한 질문들이 계속 이어진다. 선교사들 가운데 좋은 집주인을 만나서 도움을 받는 경우도 많지만, 잘못된 집주인을 만나서 어려움을 당하기도 한다.

외국인으로서 거주 등록을 하려면 이웃의 보증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집주인이나 이웃들이 자신의 신분증 복사 등 도움도 주지만, 때로는 비공개 국가의 경우에는 집주인들이나 이웃들이 선교사를 신고하는 등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이처럼 선교지에서 많은 선교사들은 ‘집’에 대한 추억이 있고, 어려운 선교 현장을 함께 보내는 가족들과의 소중한 추억이 만들어진 곳이다.

그런데 최근 중국, 인도의 대규모 선교사 추방, 코로나19로 인한 장기적 사역 중단으로 많은 한국 선교사들이 선교지의 집을 비운 채 한국에 들어오거나 정리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에 돌아오면 선교사가 이 위기의 시대를 버티거나 머물 수 있는 집이 없다는 것이다.

연일 뉴스에는 수 없이 많은 ‘집’에 대한 기사가 이어지지만, ‘선교사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찾을 수는 없다. 한국에서의 집 이야기는 집의 소유에 대한 뉴스이지만, 사실 선교사들에게 집은 이 위기의 시간 동안 잠시 와서 살아가는 존재론적인 문제이다.

집이 정해져야 자녀들을 임시라도 가까운 학교에 보낼 수가 있는데, 이주해서 두 달 정도의 안식관에서 머무르는 것은 말 그대로 임시방편이지 장기적인 대안은 아니다. 선교계와 교계는 이 문제에 대해서 심도 깊게 논의하고 해결 방안을 마련했으면 한다.

한국에서는 선교사의 신분으로 전세나 월세 보증금 대출이 불가능하다. 갑작스런 목돈이 필요한 선교사들을 위한 교계와 선교계의 긴급 지원 대출 방안이라든지, 집을 얻어도 살림살이를 구해야 되는 상황을 감안해 ‘교회와 선교사를 연결하는 중고 살림살이 나눔의 장’ 등이 이 위기의 시기에 준비되기를 기대한다.

‘선교사는 이 모든 문제를 초월해서 살아야 된다’고 이야기 하지만 이 무거운 짐을 같이 좀 나눠지면, 코로나19로 장기화된 위기에 집을 잃은 선교사들에게 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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