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실제적 무신론’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삶에서는 믿음의 열매가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실제적 무신론은 참으로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든지 자신을 속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의 아비인 마귀의 자녀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신동식 목사.ⓒ데일리굿뉴스
이러한 사람들은 오랜 시간 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그 결과가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됩니다. 그래서 실제적 무신론만큼 처참한 것이 없습니다.

주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가장 많이 싸워야 할 대상이 있다면 바로 가장된 마귀의 자녀인 실제적 무신론자입니다. 이들은 매우 그럴듯하게 진실한 신앙인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세우는데 앞장선 것 같지만 꿍꿍이는 교회를 허물고자 합니다. 그래서 아주 열심히 하여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합니다. 성경 공부도 열심히 참여합니다. 그런데 끝에는 교회를 분열시킵니다. 이 방법을 가장 잘 사용하는 이들이 바로 신천지입니다.

실제적 무신론자들의 대표적인 공작은 위선입니다. 착하게 보입니다. 열심을 보입니다. 헌신을 보입니다.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영적으로 충만하게 보입니다. 말재주가 좋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미혹하게 합니다. 여기에는 목사를 비롯한 모든 신자가 포함됩니다. 그런데 위선입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속사람은 다릅니다. 위선은 끔찍합니다. 누가 위선자와 함께 있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위선을 구별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실제적 무신론자를 판별하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불신자들이 신자의 위선을 지적할 때 신자들의 자랑을 내세웁니다. 그리스도인의 자부심과 믿음의 근거는 성경입니다. 그 가운데 성경의 무오성은 누구보다도 자랑스럽습니다. 신앙과 윤리뿐만 아니라 역사와 과학에서도 무오하다는 입장입니다.

성경에 대한 자부심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규정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근거로 질문하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자랑스러운 고백에 따라 사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디도의 지적처럼 입으로는 시인하고 행위로는 부인합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태도를 위선이라고 지적합니다. 성경을 사랑하는 만큼 위선자가 되는 슬픈 현실입니다.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부활한 성도들에게 주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의 영광입니다. 새 인류가 살 곳입니다. 그런데 현실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소망함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불신자들이 위선자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위선자들의 교회는 사단이 꿈꾸는 곳입니다. 사단은 위선으로 가득 찬 교회를 곳곳에 세우고자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면서 지옥으로 가는 길을 만들어 놉니다. 서서히 빠져들어 가서 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정신을 차려 위선을 분별하지 못하면 참혹한 결말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구별하기 어려운 위선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주 어렵지 않습니다. ‘진심’을 볼 수 있으면 됩니다. 위선을 이기는 길은 진심입니다. 정직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심이 보이는 교회가 영광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진심은 정직한 복음이 살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영광을 사모합니다. 날마다 입으로 마음으로 예수님을 주로 고백합니다. 나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합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새 인류를 만드신 예수님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뜻이 나의 일 가운데 이뤄지기를 기도합니다.

매 순간 예수님을 향한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진심을 가진 그리스도인에게는 복음에 대한 바른 고백이 늘 있습니다. 실제적 무신론자에게 볼 수 없습니다. 매 순간 주님을 향한 고백입니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도 복음을 고백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를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임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성령님을 통하여 깨닫게 해주심을 고백합니다. 홀로 있어도 함께 있어도 믿음의 고백이 있습니다. 진심을 가진 성도입니다.

모든 인류에게는 두 가지 종착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심판입니다. 두 번째는 송영과 샬롬을 누리는 영광입니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위선과 진심의 결과입니다. 누구도 피하여 갈 수 없습니다.

온 인류가 이 마지막에 설 것입니다. 그때 실제적 무신론자의 통곡과 무서움에 떨고 있음을 볼 것입니다. 하지만 기회가 없습니다. 그렇게 영원히 살게 됩니다.

무신론자들은 이러한 이야기에 웃습니다. 보이지 않는 길인데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러니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에 웃은 일들이 사실이 된 것이 셀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예표입니다. 보는 자들만 알 수 있습니다. 끝에는 다 압니다.

이 사실을 아는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진심을 보여야 합니다. 정직한 믿음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혼자 있을 때, 함께 있을 때 같은 신앙이어야 합니다. 위선을 빠르지만 무너집니다. 진심으로 힘들고 오래 가지만 든든하게 세워집니다. 교회와 가정과 신앙이 그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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