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대학교 김근수 총장
우리는 다양한 지식이 홍수처럼 범람하는 지식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은 물론이며, 보이지 않는 것에서 우주에 이르기까지 소화하기 힘든 방대한 정보와 지식을 소유한 것 같이 보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나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자기 정체성의 빈곤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 불안은 신분 의식과 사역 의식의 빈곤으로 나타납니다.

바울 사도는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라는 고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였습니다. 과거 그리스도를 비방한 비방자였으며, 교회를 박해하였던 박해자로, 성도를 폭행한 폭행자로 죄책감을 가졌습니다(딤전 1:13).

바울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라는 말씀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또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 7:24)”라고 고백하며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과 인간의 실상을 고백했습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대신 “나는 사도들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전 15:9)”,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보다 더 작은 나에게...(엡 3:8)”라는 ‘소자 의식’을 가지고 생활 하였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깨달은 참된 자기이해 덕분에 바울 사도는 남을 비하시키는 철저한 율법주의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고, 남을 정죄하던 바리새인적인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기 이해는 세월의 흐름에도 변질되지 않았습니다. 에베소에서 자신을 가리켜 ‘사도 중 작은 자(고전 15:9)’라고 고백한 바울은 그 이후 62년에 로마 감옥에 1차로 투옥되었을 때에는 자신을 ‘성도 중 작은 자(엡 3:8)’로, 그리고 다메섹 경험으로부터 30여년이 지나 로마 감옥에 2차 투옥이 되었을 때에 ‘죄인중에 괴수(딤전 1:15)’라고 고백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계속해서 자신을 비하시키고, 낮추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러한 자기 정체성조차 은혜로 주어진 것임을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 15:10)”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복음에 빚진 자(롬 1:14), 성령에 빚진 자(롬 8:12), 사랑에 빚진 자(롬 13:8)라는 부채의식을 가지고 감옥에서도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라고 말하며 자신을 사용하고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하나님의 은혜는 겸손한 심령에 임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더 낮아지고 자신의 가치없음, 무익함, 무식함, 어리석음, 연약함을 스스로가 인식하는 겸비한 신분 의식과 이에 따른 사명 의식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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