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네이션 퍼스트(Nation first)’, 즉 자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미 전 세계가 방역을 위해 인적·물적 교류를 제한하면서 상호간 교류가 줄어들고, 탈글로벌화 조짐마저 보인다. 코로나 대유행이 그간의 세계화 추세를 뒤집고 각국의 폐쇄적·배타적 민족주의 정책을 부추길 거란 어두운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이야말로 ‘모두가 세계의 시민’이라는 세계시민주의의 전통을 돌아봐야할 때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코로나19로 인해 탈세계화가 두드러지며 ‘각자도생’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사진제공=PxHere)

코로나 이후 자국 우선주의 강해져
'세계시민주의' 성찰 요구하는 시대


‘세계시민주의 전통’에서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사 C 누스바움은, 세계시민주의 전통은 우리 시대의 가장 논쟁적인 문제를 다룰 때 염두에 둬야 할 좋은 원칙들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리스와 로마의 스토아주의 철학자들부터 17세기의 휴고 그로티우스, 18세기 애덤 스미스를 거쳐 현대의 국제 인권 운동가들에 이르기까지 세계시민주의의 철학적 전통을 쫓는다. 세계시민주의가 탄생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고결한 이상’의 전통을 통찰하고 여기에 내장된 결핍까지 살펴본다.

저자에 따르면 서구 사상에서 세계시민주의의 전통은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세계 시민”이라고 대답했던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로부터 시작됐다. 디오게네스는 자신의 혈통이나 소속 도시, 사회적 계층, 성별을 선언하는 대신 자신을 인간으로 정의함으로써 모든 인간의 평등 간 가치를 암묵적으로 주장했다.

‘세계시민주의’는 이처럼 피부색과 언어의 차이를 넘어 인류가 하나라는 신념에서 출발한 것이다.

누스바움은 디오게네스에서 시작해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철학자 키케로의 ‘의무론’을 바탕으로 세계시민주의의 이념적 초석을 살핀다. 이어 스토아학파가 주창한 세계시민주의의 명과 암을 밝힌 뒤, 근대 초기의 국제법 학자 후고 그로티우스의 생각을 다룬다.

그로티우스는 국제관계가 인간성 존중이라는 도덕적 규범에 토대를 두고 있어야 한다는 키케로-스토아학파의 이념을 이어받았다. 이는 국가 간에는 어떤 도덕적 관계도 없다는 홉스의 주장과 반대되는 것이다.

이런 학자와 학파를 거쳐 세계시민주의가 보편적 이상으로 발전했지만, 결함도 존재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세계시민주의의 전통이 철저히 인간중심적이며 존엄성의 핵심을 도덕적 추론능력과 선택능력을 가졌는지에 둔다는 점을 비판한다. “기존 세계시민주의의 가장 심각한 잘못은 다른 종과 자연 환경에 대해 우리가 지고 있는 도덕적·정치적 의무를 숙고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결국 긴 여정 끝에 저자가 도달하는 곳은 ‘한층 높은 차원의 세계시민주의’다. 저자가 주장하는
세계시민주의는 도덕적 의무를 국경 너머로 확장한다. 심지어 동물과 같은 지각 있는 생명체 전체에 대한 포용까지 고려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은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얼마나 깊이 연결돼 있는지를 인식하게 만들었다. 한 개인은 지역 혹은 국가에 속한 존재만이 아니라 세계의 인류, 더 나아가 인류를 둘러싼 자연계까지 포괄하는 더 큰 세계에 얽혀 그 세계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도록 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세계시민주의’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세계시민주의를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을 끌어안아야 한다. 저자는 세계 전체에 대해 ‘폭넓게, 포용적으로 사고하라’는 세계시민주의 전통의 요청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기주의와 파벌주의로부터 떨어져 나와 한층 높은 차원의 세계에 참여할 것을 요청한다. 각자도생의 엄혹한 시대에서 살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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