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영 ⓒ데일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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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제19대 대선을 앞두고 드루킹(필명) 일당은 ‘킹크랩’이라는 댓글 조작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이를 이용해 2016년 말부터 2018년 1월까지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 사이트의 기사(6만8,000여 개)에 달린 댓글(68만여 개)을 대상으로 ‘공감·비공감’ 클릭 수(4,133만여 개)를 조작했다. 당시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인터넷 댓글 조작을 지시한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이다.

대법원은 2021년 7월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드루킹 일당의 프로그램 사용을 묵인·지시한 것으로 인정하고, 컴퓨터등장애업무방해죄와 공직선거법위반죄를 적용해 징역 2년을 확정했다.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은 2012년 대선을 겨냥해 2009년부터 2012년 대선 때까지 국가정보원 등이 조직적으로 여론을 조작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국정원뿐 아니라 국군 사이버사령부와 기무사령부, 경찰까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국정원은 내부 인트라넷을 통해 직원들에게 정치에 개입하는 인터넷 활동을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10 개 이상의 포털 사이트에서 여당 후보 측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야권 후보를 비난하는 게시 글 을 남겼다.

재상고심까지 연장된 재판 결과, 사건을 주도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국가정보원법 위반죄와 공직선거법 위반죄를 적용해 징역 4년을 확정했다.

두 사건 모두 선거의 판세를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인터넷에서 여론을 조작한 범죄다. 범죄자들에게 인터넷은 여론의 형성과 확산을 위한 최적의 ‘공간’이었다.

이들이 국기를 문란하면서 여론을 조작한 이유는 밴드왜건(Bandwagon Effect) 효과를 통한 선거 승리를 위해서다. 밴드왜건 효과는 뚜렷한 주관 없이 다른 사람들의 선택을 따라 하는 행위다. 선거에서는 부동층이 지지도가 높은 쪽 후보를 선택하는 행위로 통한다. 여론을 측정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여론을 결정하는 꼴이다.

3월 28일부터 제22대 국회의원 선출을 위한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언론은 연일 격전지로 꼽히는 관심 지역과 정당의 지지도를 묻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고 있다. 정당 지지도는 비례대표 당선자 수를 가늠케 한다.

정당은 물론 유권자들도 여론의 향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자신에게 유리한 조사 결과가 나오면 SNS 등을 통해 이를 재배포, 확산한다.

이처럼 여론조사의 결과가 선거의 승패를 결정할 정도로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여론조사가 오·남용되는 경우가 많다. 주요 정당이 여론조사를 통해 공직선거 후보자를 결정하면서 특히 심해졌다.

유선 전화로만 여론조사를 실시하던 시절, 전화번호를 다량 구입한 뒤 걸려오는 조사에 답변하는 방식으로 여론을 부풀렸다. 심지어 유령 여론조사 회사를 만들거나, 착신전환 방법으로 여론을 조작했다.

정당이 특정 후보를 선출하기 위해 여러 차례 조사를 실시한 뒤, 특정 후보가 승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후보를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후보끼리 치열한 접전을 펼칠 경우 특정 후보가 앞서는 순간 조사를 중단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불법을 저지른다.

여론조사를 이용한 당내 경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실상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사정기관이 수사를 하지 않는 한 조작, 왜곡 등 각종 불법 행위를 적발할 수 없는 구조다.

중앙 선거관리위원회는 2014년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중앙 및 시·도 선거관리위원회 산하에 각각 ‘선거여론조사 심위위원회’를 설치했다. 여론조사가 사실을 왜곡하지 않도록 하고, 국민 여론을 제대로 반영해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여론조사 기준을 설정하고, 그 결과를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 등록토록 규정했다.

하지만 각 정당이 경선을 위해 실시한 여론조사는 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의 업무 범위 밖이다. 여론조사 절차와 방식 등을 놓고 후보자 간에 시비가 붙어도 여론조사 심의위가 개입할 근거가 없다.

특정 선거구를 대상으로 동시에 실시한 여론조사라도 결과가 다르게 나올 경우가 많다. 응답 방식이 자동응답(ARS·Automatic Response Service)인지 전화조사원을 통한 인터뷰 방식이냐에 따라 응답률이 차이 난다. 유·무선(RDD, 휴대전화 가상번호)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1% 수준의 응답률을 보인 여론조사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느냐를 놓고 논란이다.

무작위 표집이든 할당 표집이든 가중치 배율이 높으면 신뢰도가 낮아진다. 서울 거주 20대 여성 37명을 조사해야 하는데 10명밖에 못했다고 가정하면, 10명 조사 결과에 3.7을 곱한 값으로 환산한다. 그만큼 조사가 왜곡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조사 범위도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모집단이 커질수록 오차의 범위를 좁혀 신뢰도를 높인다. 일정 수준 이하의 모집단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는 인정하지 않는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대통령선거 여론조사의 표본을 1,000명 이상으로, 광역단체장의 경우 800명 이상, 지역구 국회의원은 500명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직선거법(108조)은 선거일 전 6일부터 선거일의 투표 마감 시각까지 선거에 관하여 정당에 대한 지지도나 당선인을 예상하게 하는 여론조사의 경위와 그 결과를 공표하거나 인용하여 보도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평하고 정확하게 실시된 여론조사라도 결과가 공표되면 밴드왜건 효과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열세 후보를 지지하는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가 나타나게 되는 등 선거에 미칠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여론조사는 민심의 방향을 측정하는 동시에 선거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사회과학적 조사 방법이다. 전체 유권자의 0.1%도 되지 않은 표본으로 결과 예측이 가능할 만큼 ‘진화’를 거듭했다.

물론 여론조사는 모든 연령층이 동일한 비율로 투표한 것을 전제로 지지율을 산출하기 때문에 실제 득표율과 차이를 보인다. 여론조사 때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지 않은 ‘샤이층’의 비율 역시 조사에 반영되지 않는다.

여론조사는 말 그대로 조사일 뿐이다. 여론에 휩쓸린 투표보다, 국가와 지역을 발전시키고,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대행할 진정한 ‘일꾼’이 누구인지 살펴보자. 그리고 꼭 투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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